'핵 없는 세상'은 이상이다. 이는 환경단체들이 내거는 구호이기도 하다. 영화 '판도라'를 보고, 경주 지진에 움츠러든 어느 국민이 '핵 없는 세상'을 마다할까. 핵 걱정 없는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환경단체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니 그 존재의 필요성을 부인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반면 현실은 다르다. 아직은 '핵이 필요한 세상'이다. 무력이 아닌 에너지원으로서의 핵이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따름이다. 전문가들은 영화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0'라 한다. 물론 원자력은 완벽한 에너지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원자력만큼 적은 폐기물을 내면서 가장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원은 없다. 에너지원이 제한된 나라에서 기후변화를 막고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기엔 그만이다. 무엇보다 인류는 아직 이보다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드골이 정치를 두고 '최고의 예술'이라 한 것은 곱씹어 들을만하다. 정치의 묘미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조율해 나가는 데 있음을 설파한 말이다. 온갖 이해집단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두고 충돌할 때 이를 적절히 중재하고 조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치가의 능력이자 역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환경론자들의 손을 번쩍 들어줬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상을 택했다. 탈핵국가를 선언해 버렸다. 계획뿐인 원전뿐 아니라 이미 착공한 원전 공사까지 모두 중단했다. 대통령이 손을 들어주자 탈원전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38개월간 심의를 거쳐 착공된 신고리 5'6호기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공사가 중단됐다.
원전 전문가, 한수원 노조의 반발은 부질없어졌다.
탈핵은 이상적인 것 같지만 여파는 부정적이다. '탈핵 선언'의 이유가 '안전'뿐이라면 '아직' 원전이 필요한 이유는 '안전'을 포함해 수두룩하다.
지난 5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580여 기의 원전이 가동돼 왔지만 지진으로 심각한 방사능 유출 사례는 없다. 원전사고의 대명사가 된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전은 격납용기도 없던 시절의 원전이다. 지진에다 해일이 겹치면서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역시 낡은 모델이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이런 사고가 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본다.
'탈원전' 대신 문 대통령은 현재 4.7%인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이 목표를 채우려면 대구 동'서'남'북구에다 달서구 전체를 합한 면적(370㎢)만큼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한다. 풍력 역시 제주도 면적의 1.6배인 2천975㎢가 필요하다. 원전보다 더한 환경훼손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원자력의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은 ㎾h당 10g에 불과하지만 석탄은 991g, LNG는 549g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환경단체가 문 대통령에게 탈원전 정책 재고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을 정도다.
세계 원전시장은 팽창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10기의 새 원전이 가동에 들어갔고 건설 중인 원전이 61기다. 미국도 20년 만에 지난해 신규원전을 가동했고 4기의 원전을 더 짓고 있다. '원전 제로'를 선언했던 일본조차 원전 5기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2014년 탈핵 선언을 했던 대만은 불과 2년여 만에 원전 재가동을 시작했다.
원전은 효자산업이다. 국민들에겐 낮은 전기료 혜택을 주고, 연관 일자리만 10만 개에 달한다. 반도체나 휴대폰 같은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수출에도 탄력이 붙었다. 아랍에미리트에 21조원 상당을 수출했고 영국에 원전수출을 추진하다 탈핵 사태를 맞았다.
국제원자력기구는 '10만 가동년에 한 번 중대사고'란 안전 목표를 설정했다. 실제는 3천 가동년에 한 번꼴로 사고가 났다. 기술이 향상되면서 목표에 다가설 것이다. 그만큼 최신 원전은 안전하게 지어진다는 뜻이다. 어쩌면 신기루가 될 안전 문제로 국가에너지 대계를 망치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원전이 위험하다고 없애기보다는 더 안전한 원전을 짓기 위해 연구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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