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딸아이들은 취학 전의 유아였다. 강우 씨는 하루도 어김없이 자정 무렵에 그것도 거나해져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그이는 잠든 아이들을 일일이 깨워서 손뼉 치고 놀다가 자기 혼자 잠들곤 했다.
그날도 강우 씨는 취한 몸을 뉘자마자 여느 날처럼 잠에 빠져들며 코를 골았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은 나는 강우 씨의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다. 그러자 그이는 옆으로 몸을 돌려 누우며 코 고는 소리를 멈추었다. 와락 쓸쓸함이 몰려왔다. 대저 남편이란 남자와 하루에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나 짚어 보았다. 나는 유령처럼 소리 없이 일어나 커튼을 들쳤다. 보름을 넘긴 달이 웃다가 만 얼굴로 잠 못 드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다는 것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회의가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갔다.
답답한 나날이 흘러갔다. 어제 오늘이 다르지 않았다. 시간에 쫓겨 종종대며 끊임없는 일거리에 매달려야만 했다. 세 아이를 포함한 일곱 식구의 일상을 꾸려나가는 일이 한 사람 몫이었다. 잠시 잠깐 도움을 청할 만한 이웃도 친척도 없었다. 친정 나들이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냉장고도 세탁기도 없던 1970년대 중후반의 한국 서민 가정. 아기 기저귀 등 모든 빨래는 손으로 비벼 빨고 어미 닭을 쫓아다니는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전통시장에서 장을 봐야 했다. 말 그대로 몸으로 부딪쳐 해결하는 생활이었다. 밥을 먹는 시간조차 아껴야 하는 상황에 차 한 잔을 마시는 3분의 여유는 사치였다. 가물어 터진 논바닥 같은 갈증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어쩌면 나는 사랑이라는 따스한 햇볕을 좇아 전 생애를 걸고 뭍으로 나온 한 마리 물고기였는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파닥거리며 되돌아갈 수 없는 바다를 갈망하는…… . 엄마도 아내도 형수도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한 맑은 물과 산소가 절실했다. 한두 시간만이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누리는 자유로운 유영을 꿈꿨다. 인간의 자기애적 본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작 서른 안팎의 내가 좌절했다거나 절망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롯이 나의 두 손과 두 발로 헤쳐 나가야 하는 일상에서의 육신의 고달픔을 털어놓는 것뿐이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남편은 쌀독 걱정을 시키지 않았으며 정신적인 깊은 고민거리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한 고민을 집으로 들여오지 않은 것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따져본다면 우리 가족 가운데 안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나였을 거라는 정답에 이의는 없다.
여름날의 광안리. 어느 일요일이었다. 낮잠에 빠진 강우 씨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보채는 아이들을 데리고 민우 삼촌과 함께 처음으로 바닷가에 나갔다. 베란다에서 바라보이는 바다는 생각보다 코앞이었다. 아무리 고달프게 흘러가는 일상이라지만 바다가 이리도 가깝게 있는 줄을 모르고 살다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바다에서는 갓 따 올린 굴 냄새 나는 상긋한 바람이 불었다. 오가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활기 있고 행복해 보였다. 모래사장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한나절을 놀았다.
"형수요, 난 형수 닮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습니데이."
느닷없는 민우 삼촌의 말이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삼촌은 예쁘고 똑똑한 사람을 만나야지."
"형수는…… 우리 형 만나가지고 참말로 고생 많으세요. 다 압니데이."
"그런 소리 말고 어서 든든한 취직 자리나 구해 봐요."
"형수한테는 진짜로 참말로 미안합니데이. 잘 알고 있어예."
민우 삼촌은 다정다감한 품성으로 조카들을 유다르게 귀여워했다. 우리는 한나절을 놀았다.
돌아오는 길머리 한갓진 공터에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할아버지의 노천 가게가 있었다. 아기를 업은 내 발걸음이 멈추었다.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거침없이 해안도로를 달려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수요, 혹시 자전거…… 타고 싶은 거 아입니까?"
"뭘요…… 탈 줄도 모르는데요, 뭐."
며칠 후. 민우 삼촌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털어서 여성용 자전거를 사왔다. 꽃무늬도 화려한 핑크색 스마트 자전거였다. 장신의 남자가 여성용 자전거를 (서면에서 광안리까지) 직접 타고 날라 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형수요, 걱정 마이소. 해 떨어지면 골목에 나가서 내가 가르쳐 드릴 테니까."
민우 삼촌이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1979년 봄이었다.
골목에서는 밤마다 자전거 넘어지는 쇳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민우 삼촌은 나를 자전거 앞자리에 앉게 한 후 꽁무니를 붙잡고 밀면서 따라왔다. 그가 손을 떼기만 하면 나는 보고 있었던 사람처럼 중심을 잃고 대책 없이 쓰러졌다. 역시나 운동신경은 둔하기 짝없는 나였다.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된 자전거 교습은 결국 교습생의 하반신에 피멍을 잔뜩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나의 자전거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조금은 특별하게,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 한 마리가 놀기에 충분한 양의 물이 담긴 수조가 되어주고 비 갠 여름날 아침의 상쾌한 바람까지도 실어 나르는 소중한 의미가 되었던 것이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전 10시경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다섯 살 큰아이는 가녀린 두 팔 안에 세 살 둘째를 가둘 줄 알고 있었다. 연년생 순둥이 셋째는 정확히 두 시간 동안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출발. 되도록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나간다. 파도의 진동이 비 맞은 낙엽처럼 의기소침한 내 안의 세포를 깨우기 시작한다. 어디로부터의 기운인가. 나도 모르는 힘을 느낀다. 내면의 힘은 울적한 심사를 단칼에 절단하고 사소한 근심을 기억의 수면으로부터 조각조각 증발시켰다. 그새 분명한 기쁨 한 오라기가 가슴 언저리를 휘젓는다. 해풍을 가르며 거침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엔 꿈만 같던 옛일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결혼 전. 강우 씨는 매주 토요일 오후만 되면 서울로 왔다가 일요일 마지막 밤 기차로 부산으로 돌아갔다. 어떠한 주제로든 나를 웃게 만드는 그는 뜻밖에도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즐겨 낭송했다. 술이 거나해지면 장소를 불문하고 터져 나오는 미라보 다리였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청춘도 흘러내린다.
그가 읊는 시를 듣고 있노라면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했다. 실제 사정인즉 부모도 집도 절도 없는 그이였다.
"부모가 없으니 근본을 알 수가 없지 않느냐. 그리고…… 술이 과해."
아버지는 말렸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결국은 사회적 약자였던 미혼의 두 남동생에 대한 암시적인 의무도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어떤 영향이었던지 결코 적지 않은 부담감도 그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뿐인가. 모든 악조건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그이의 무언의 자신감을 굳건히 믿었으며 나 스스로의 선택을 또한 믿었다. 나는 서울 생활을 접었고 결혼과 동시에 부산에 정착했다. 서로 가난했으므로 가난만은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아마도 일상의 자잘한 어려움들이 생애에 단 한 번 빛을 발하는 신혼이라는 화려한 꽃무늬 보자기에 싸여 문제를 문제로 의식하지도 않고 넘어갔을 것이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전국 신문사 최초로 매일신문이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공모 부문은 논픽션, 시, 수필 등 3개 부문입니다. 대상 1명 500만원, 최우수상 3명 각 300만원, 우수상 15명 각 100만원 등 총상금은 4천100만원입니다. 주제는 제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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