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 옛날이여] 양은지의 '동성로' 그때 그 추억

아카데미극장 옆 캐빈, 오후 4시 문 열자 입장해 디스코 막춤

양은지 문화관광대구경북협동조합 이사장
양은지 문화관광대구경북협동조합 이사장

미진분식엔 허기 채워주던 달달한 우동·화끈한 쫄면

미팅한 법대생과 개정식당서 비빔밥 먹고는 바이바이

친구와 마주한 학사주점 "여자끼리 술을? 말세다, 말세"

미진분식서 달달한 우동과 김밥 한 줄 그리고 맵고도 화끈한 쫄면. 순수한 천사도 순수한 악마도 이 쫄깃한 인생에 관여는 못 하리라.

한일극장에서 임예진과 전영록의 하이틴 영화를 보고 어쩜 저리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청춘스타는 여고생들의 우상! 나도 예진이보다 못할 게 없지. 꼭 대학 가서 영록이를 만나야지. 다짐 또 다짐.

아루스화방서 비싼 홀베인 물감 세 개 샀다. 나무박스 안에 국산 물감 몇 개 가볍지만 폼나게 아트박스 들고 활보하는 나는 우아한 미대 소녀.

아루스화방 건너 상아화방. 고등학교 마치고 한 번도 안 보이던 형덕이가 밤늦게 전화가 왔다. 조각을 한다고 조각도 같이 좀 사잔다. 반갑기도 하고 미대 갔다고 좋아하더먼. 졸업식 때 보고…. 중파(중앙파출소) 앞에서 만났다. 아니 고딩 때도 긴 머리 하던 애가 완전 까까중! 땡고(능인고등) 마치고 바로 행자승 전북 무슨 절에 갔단다. 같은 동네서 각별히 나를 친동생처럼…. 조각도 사주고 돌아오는 겨울밤이 왜 그리 매서운지.

운동의 천재 핸드볼의 귀재였지만 코치한테 기아리(대드는 것을 이때는 이렇게 표현) 먹고 대학 못 간 원화를 시내 거목다방서 만났다. 여전히 새까맣고 눈은 반짝인다. 정규수업을 안 받아서 그렇지 아까운 인재다. 영어로 된 팝송을 우리 글로 적어 주었을 때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카데미극장 골목 송학구이는 아주 많은 종류의 찌개다시를 자랑했던가. 소간과 천엽이 계속해서 나오며 오드래기 소 혓바닥 구이는 고추장을 발라 연탄불에 구우니 얼마나 향긋한지. 고춧가루에 참기름 듬뿍 굵게 빻은 마늘로 만든 양념장에 잡은 지 얼마 안 된 소 허벅지살. 오늘 잡은 소의 골, 김이 모락모락 하다 참기름 동동 띄우니 참 고시하다. 특별한 손님에게만 준다는 특 서비스, 하긴 나같이 귀여운 손님에게는 특별하게 대접해야 자주 오지.

강창다리에서 단체팅 치대하고 하기로 했는데, 어디서 차출했는지 법대생이 내 파트너로 왔다. 아주 맘에 들면서 순진무구하게 보인다. 리포트 써달라고 해야지. 담에 만날 수 있어. 드디어 써 가지고 왔네. 아주 훌륭해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있어. 답례로 개정식당에 비빔밥 먹었는데 인상이 아닌 듯 우짜지! 아 여기 데리고 오는 게 아닌데. 경대 후문 가서 라면이나 먹였어야 되는데. 촌놈한테 고기 고명 올린 비빔밥…. 애공 두 번 다시 못 봤다. 겁나서 도망간 그놈, 고시에 떨어져라.

DJ가 틀어준 나나 무스쿠리의 '오버 앤 오버' 계속해서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라이덜 라이 라이덜 라이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 무아의 DJ는 우째저리 쌈박하게 생겼지. 계란 노른자를 갈아서 고명으로 올린 멕시칸 사라다는 왜 이리 꼬시하지. 담에 올 때는 한 놈 꼬셔서 와야 되는데. 누굴 꼬시지 여긴 너무 비싸.

그리스풍의 하얀 건물. 화려한 꽃무늬 소파의 반쥴 하이네켄 맥주. 12년 동안 공부하고 온 사촌 형부 초대 정치학과 교수로 오셨다. 독일 맥주와 가장 비슷한 하이네켄. 둘이서 전혜린과 뮌헨을 이야기하고 우리나라의 데모하는 자기 과 학생을 걱정하고…. 형부 남 걱정하지 말고 다음 주 가야 되는 페스티벌 처제 파트너나 걱정 좀 해 주이소. 마.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계약 결혼이란 걸 했다고요. 나도 담에 그런 거 해야지. 대한민국의 최고의 지성인 되는 거죠.

한일호텔 옆 뜨락 입구에 권준 그림이. 회색빛 바탕에 옆 얼굴의 여자. 저 그림 돈 벌어서 내가 꼭 사야지. 잘난 척하는 저놈은 나한테 돈가스 하나 시켜주고. 이에 거품 물고 잘난 척하네. 더럽게 아는 것도 없구먼. 니가 독일서 박사나 받아오고 잘난 척 해죠. 이노무 돼지고기는 왜 이리 질기지.

오후 10시 넘어올라 간 맥심 대백 11층. 돈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참 많네. 내 보고 와서 맥주 한 잔하란다. 여기 자주 오면 시집은 다 갔다. 앞으로 여긴 오마 안돼. 그리고 5번밖에 안 갔음.

지금의 야시골목 스텐드바와 룸살롱이 즐비한 곳. 팔반, 우연, 동경, 심해, 늘봄, 거화…. 이쁜 여대생들이 아르바이트하던 곳 비싼 옷 입고 빨간 루즈 바르고 기다란 허연 다리 내 놓고 접대하다가 숨어서 담배 피우며 앉아 있던 손님 욕을 양껏 하네. 근데 들어와서 빨간 불빛에는 얼마나 아양을 떠는지. 가슴이 훅 파진 드레스 저거 내가 입으면 어울릴 텐데.

소방차가 시도한 새 춤의 시작. 영턱스의 뒷빽춤. 그들이 디스코의 서막을 열었다. 존 트라볼타의 새틀데이 피블스, 디스코의 진수 우리는 광분했지 아마도….

아카데미극장 옆 캐빈, 오후 9시에 귀가해야 되는 정록이 때문에 오후 4시부터 가서 문 열기를 기다리는 염원으로 청소 끝나면 바로 돌진. 총괄주먹상무님이 웨이터 교육시킬 때 우리 6명도 같이 교육받고, 드디어 음악이 나오고 술도 시키고 주머니 각자 탈탈 털고 맥주 3병 안주 마른안주 과일 안주가 기본. 그것도 다 못 먹고 술을 남기고 온 우리는 오직 춤으로만 승부를 걸었다. 그것은 막춤인 듯….

오후 8시 넘어서 많은 이들이 들어닥치네. 남들 입장할 때 우리는 집에 가야 할 시간. 잘생긴 그놈을 두고 쓰리지만 돌아서 집으로 와야만 하는 여자는 힘든 시대!

영어를 잘해야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흑인과도 백인도 speaking해야 돼. 헤럴드 어학원이 할 수는 없지. 고딩 때 성문종합이 천지 쓰일 때가 없네. 하얀 얼굴 까만 머리 노란 피부 가리지 말고 무조건 들이대서 이바구 해야돼. 봐, 혓바닥 잘 구르잖아.

중앙파출소에 먼놈이 저리 많아. 온 방 술 먹고 싸워서 잡혀 온 놈만 가득. 어쭈 저놈은 어딜 가는 거지. 도망치다 오줌 마렵지. 여기저기서 오줌 깔기고 있잖아. 이놈아, 돌아서서 싸야지.

오늘은 일요일 도서관 가서 자리 잡아야 돼. 그래도 머리 롤은 말아야 되는데. 책을 넘 많이 갖고 온 듯. 12번 버스 타고 퍼뜩 가서 겨우 자리 잡았네. 근대와 현대미술원서 번역해서 P교수 코를 납작하게 해야 되는데…. 지난주처럼 대백 3층서 옷 보고 전원돈까스 먹고 그냥 집에 가면 안 되는데.

반월당의 학사주점. 서울 고대 간 뚱보가 내려왔다. 말(억양)이 약간 올라간 듯. 그래도 많이 어색하지는 않네.

폼나게 금복주가 아닌 진로를 시켰다. 왜 딴 테이블에서 우리를 보지. 내가 너무 예쁜가. 어, 저놈이 이리로 오네. 여자들이 싸가지없게 여자들끼리 술을 마셔. 말세다, 말세. 쯧쯧…. 웃기시네. 웃기시네. 술값 니가 내냐, 니나 잘해. 술 먹고 헛소리 말고…. 우리의 수다는 인생의 한 자락으로 무수한 미래를 설계하였고 어렵지만 어려운 줄 몰랐고 힘들고 힘든 한 자락을 엮어갔다.

양은지 문화관광대구경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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