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강간'흉악범 공소시효 폐지,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건가

대법원이 지난 1998년 대구에서 일어난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이유로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의 무죄를 18일 확정했다. 검경이 혐의를 밝혀내고 용의자가 자백까지 했지만 시효 만료로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범행이 드러났음에도 용의자는 끝내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유족은 지울 수 없는 상실의 아픔과 상처로 평생의 한(恨)을 안고 살게 됐다. 강간범이나 주요 흉악범의 공소시효 폐지 여론이 거센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우리 검경의 허술한 수사가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국민에게 지우는지를 극명히 보여줬다. 지금과 같은 엉터리 수사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실추된 국민 신뢰 회복은 기대 절벽이다. 이번 판결은 여대생 성폭행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 빚어졌다. 경찰이 유족의 피맺힌 자구 노력에 이끌려 뒤늦은 2013년 재수사에 나서 강간 사실을 밝혔지만 이미 공소시효 10년이 지난 뒤여서 어쩔 수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경찰의 자업자득이었다.

경찰이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법원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1심부터 무죄를 판결한 데 이어 항소심과 대법원마저도 원심대로 선고했다. 수사 당국이 증인까지 내세웠으나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당초 초동수사를 엉성히 한 데 따른 수사 인력 낭비 등 헛수고만 한 셈이다. 지금으로서는 검찰이 강간죄 공소시효가 20년인 스리랑카 법에 따라 용의자를 현지 법정에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이제 남은 과제는 현행법 규정을 손질하는 일이다. 꿈 많은 한 여성의 삶은 물론,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까지 한순간 앗아간 강간 범죄나 반인륜적인 주요 흉악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마땅히 나올 만하다. 이미 그런 사례도 있었다. 1999년 대구에서 발생한 어린이 황산 테러 사망 사건으로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의 소위 '태완이법'이 발효된 일이다. 이번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역시 공소시효의 턱에 걸렸다. 이제 국회가 법을 손질해야 한다. 국민 안전과 생명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서두르는 만큼 국민 법익(法益)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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