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하다 보면 앙숙이 생긴다.
최근 만난 권오을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같은 경북에서 의정 생활을 하던 이상득 전 국회의원을 꼽았다.
권 전 의원은 10여 년 전 한나라당 경북도당위원장 선출에서 이 전 의원을 추대하지 않고 대선배에게 '감히'(?) 경선이란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40대 나이로 3선이던 권 전 의원의 거침 없는 행보에 이 전 의원은 당황했고, '이겨도 본전'인 싸움에서 승리했으나 적지 않은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이때 쌓인 앙금 때문에 이명박정부는 권 전 의원의 장관직 임명을 두 번이나 검토했으나, '상왕'이던 이 전 의원이 기를 쓰고 반대해 결국 무산시켰다는 게 권 전 의원의 전언이다.
정치를 하다 보면 앙숙에서 친구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서울 노원을 지역구에서 12년 동안이나 '혈투'를 벌였다. 17대 총선에서 2천 표 차이로 우 원내대표가 승리했으나, 18대에선 권 시장이 5천 표 차이로 이겼다. 이후 19대에서 다시 우 원내대표가 1만여 표 차이로 권 시장을 누르는 등 당사자들 표현에 따르면 '이가 갈리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최근 민주당 대구경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회했다. "지역 잘 좀 보살펴 달라"는 권 시장에게 우 원내대표는 "미운 정이지만 우리 사이의 정이 어디 가겠느냐. 걱정하지 말라"며 부둥켜안았다. 같은 자리에 참석한 김관용 경북지사와 홍의락 민주당 국회의원도 비슷한 케이스다.
지난 5대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자리를 두고 여야 주자로 맞붙었다. 결과는 김 지사의 75만 표 차이의 압승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김 지사는 힘 있는 여당 도움을 얻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반면 특별위원장인 홍 의원은 정부 지원의 키를 쥐고 있다. 도지사 선거 때와는 달리 '갑'과 '을'이 뒤바뀐 느낌이다.
정치에서 앙숙과 친구가 생겼다가 뒤집히는 경우는 집단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호남의 선택으로 정권을 차지한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 의원들이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만든 것과 문재인 대통령에 반발해 국민의당이 탄생한 점 등이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 덕분에 당선된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가 일부 의원들이 다시 자유한국당에 복귀한 점도 다르지 않다.
대구경북은 오랜만에 여야로부터 애정 공세를 받고 있다. 한국당은 대구경북발전협의회를 발족했고, 민주당은 지역 발전을 위한 특위를 구성했다. 오랜 '친구'였던 한국당과 어찌 보면 '앙숙' 관계였던 민주당 사이에서 어떤 감정 변화가 일어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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