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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 민송기/ 학이사 2016

말에도 맵시가 있다

최현배의
최현배의 '우리말본' 표지.
국립 중앙박물관 외벽
국립 중앙박물관 외벽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 민송기/ 학이사 2016

연일 폭염이다. 늦은 저녁, 자장면을 시켜놓고 책을 펼쳤다. 표지에는 '민 선생의 우리말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인 민송기는 실제로 국어선생이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말이라고 하니, 먼저 표준말, 바른말, 고운 말이 떠오른다. 이런 여타의 책들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만든 건 제목이었다.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라고 했으니, 말을 만든 사람보다 말을 쓰는 사람을 배려하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쉽고, 가볍게 우리말에 담겨 있는 삶을 '생각해' 보는 책이다. 독자들이 우리말을 통해 지식과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소개했다. 정말로 어려운 주제도 쉽게 읽혔다.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고 적확한 예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단숨에 1부를 읽었다. 아차, 싶었다. 삶을 '생각해' 보는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2부는 의도적으로 쉬어가며 읽었다. 듣기만 하려고 해도 어느새 우리말을 가운데 두고 저자와 독자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더 천천히 읽었다.

이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바른말 고운 말에 대한 고정관념을 짚어준다. 사람들이 왜 '짜장면'이라는 말을 더 즐겨 쓰는지, 저우룬파를 주윤발이라고 부르는지,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면서 가책을 느껴야 하는지, '너무 좋다'는 댓글을 달면서 틀린 답안을 뻔뻔하게 내미는 것처럼 불편해하는지, 명확하게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로 '국어선생도 헷갈리는' 말이 있음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2부는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말을 소개해 준다. 1부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놓고, 전문가의 시선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두루두루 언급하고 있다. 수능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찾는 문제는 있지만,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을 찾는' 유형은 없다는 것, 빌린 사람과 빌려 준 사람을 모두 빚쟁이라 부르는 것, 논리에 맞지만 덜 쓰는 말과 논리에는 안 맞지만 두루뭉술하게 계속 쓰는 말이 있다. 특히 '남침'과 '불혹'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 깊었고, 자장면으로 쓰고 짜장면으로 읽는 이유도 명쾌하다. 무릎을 치게 만든다. 3부의 소제목은 '문학 읽기의 즐거움'이다. 말 그대로 말의 즐거움을 문학에서 찾고 있다. 시와 고전을 읽고 '독자들은 타당한 해석과 자신만의 기발한 해석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즐긴다'(178쪽)고 한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타당한 해설에 딴죽걸면서 기발한 해석을 해보는 즐거움을 누려 보리라. 4부에서는 한글과 훈민정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국어 공부 잘하는 법을 묻기 전에 "노력이 고민을 해결한다"(209쪽)는 어느 야구선수의 말을 전해준다. 그 외에 고3의 받아쓰기 시간에 대한 일화가 짤막하면서도 묵직하게 소개되어 있다.

말은 곧 삶이다. 삶을 '생각해' 보자고 한 것은 바로 말을 생각해 보는 것과 같다. 말 한마디가 생사를 가르기도 하고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말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자신의 입말을 자주 살피는 것이다. 말에도 맵시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알려주고 있다. 폭염에도, 폭우에도,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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