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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전에, 곤충이 먼저 세상을 통제했다…『곤충의 통찰력』

곤충의 통찰력/ 길버트 월드바우어 지음/김홍옥 옮김/에코 리브르 펴냄

현재 지구에는 30만 종이 넘는 식물과 120만 종이 넘은 동물이 살고 있다. 120만 동물 종 가운데 90만 종이 곤충이다. 이 90만 종 중 2% 미만이 인간이 재배하는 곡물과 채소를 먹어치우거나 질병을 옮긴다. 이 책은 모기'파리'진딧물'조명나방 등 해충 20종을 '곤충계의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리고, 집중 해부한다.

'해충'이라는 말은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규정한 것이다. 곤충들은 선한 의지도 악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모든 해충 역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과정을 거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승자일 뿐이다.

◇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한 변신

이 책 '곤충의 통찰력'은 20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은 곤충들이 진화의 3가지 명령(▷열심히 먹고 성장할 것 ▷어떻게든 잡아먹히는 사태를 피할 것 ▷성년기까지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릴 것)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한 기묘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짚어본다.

영국 맨체스터 인근 숲에 사는 얼룩나방은 색깔이 연했다. 따라서 밝은색 나무껍질에 붙어 있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함께 석탄을 때는 공장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공장 부근의 나무줄기가 매연으로 검어졌다. 밝은색 얼룩나방이 검은 나무 줄기에 붙어 있으면 금방 눈에 띈다. 1848년 검은색 얼룩나방 한 마리가 산업도시 맨체스터 인근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1898년경에는 맨체스터에 서식하는 얼룩나방 개체 중 약 95%가 검은색 얼룩나방으로 대체되었다.

이 외에도 적을 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밤에 날아다니는 나방은 박쥐가 반향 위치 측정을 하면서 내는 울음소리를 듣고 회피 작전을 쓴다. 꿀벌은 침입자를 쏘아 자기 군체를 보호한다. 검은제비꼬리나비의 유충은 마치 새똥처럼 위장해 새들이 무심히 지나치게 만든다. 검은제비꼬리나비의 번데기도 변색 왕이다. 여름에는 초록색으로, 겨울에는 갈색이나 회색으로 환경과 어우러지는 위장술을 구사한다. 검은제비꼬리나비 성충은 독성 나비를 의태함으로써 새들의 공격을 피한다. 그러나 어떤 방어 기제도 완벽하지는 않다. 따라서 끝까지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하는 곤충은 극소수다. 덕분에 특정 종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 곤충들은 겨울을 어떻게 넘길까

곤충의 생존에 또 하나의 관건은 겨울나기다. 북극 지방과 온대지방에 사는 곤충 대다수는 휴면이라 일컫는 동면 비슷한 상태로 무시무시한 겨울을 견딘다. 그들은 휴면하는 동안 발달을 멈추고, 지독한 추위를 견디며, 몸에 비축해 놓은 지방으로 겨우내 살아남기 위해 신진대사율을 낮춘다.

휴면은 어느 발달단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도롱이벌레는 진딧물이나 매미나방처럼 알 단계에서 휴면한다. 그런가 하면 코들링나방과 알풍뎅이는 유충 단계에서, 배추흰나비와 큰담배밤나방은 번데기 단계에서, 긴노린재와 몇몇 모기 종은 성충 단계에서 휴면한다.

이 모든 곤충들은 휴면을 종료하면 그때가 봄이든 여름이든 가리지 않고 발달을 재개한다. 물론 각종 곤충들은 자신에게 가장 우호적인 때에 맞춰 휴면을 끝낸다. 이를테면 교미하기에 가장 좋은 때, 온도가 알맞을 때, 자신들이 꿀을 빨아먹는 식물의 꽃이 만발할 때, 혹은 기생 곤충이라면 기주를 이용하기 가장 좋을 때 휴면을 끝낸다.

◇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다양한 전략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임무는 번식이다. 자연 선택의 검열을 통과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곤충들의 구조적'생리적'행동적 적응은 천태만상이다.

어떤 종의 수컷은 암컷을 부른다. 예를 들어 도롱이벌레나 매미나방 등을 비롯한 수많은 종은 성페로몬으로 교미 상대를 꼬드긴다. 그런가 하면 광대파리 수컷은 암컷이 산란하는 장소에, 또 체체파리 수컷은 암컷이 먹잇감을 구하는 장소에 미리 숨어서 암컷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후손 잇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진딧물과 체체파리는 각각 상반된 전략을 택한다. 진딧물은 숫자로 밀어붙인다. 즉 수많은 2세를 낳은 다음 그중 일부가 운 좋게 살아남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진딧물뿐만 아니라 큰담배밤나방, 도롱이벌레, 밀혹파리 등도 수많은 알을 낳고, 방치하다시피 한다.

반면 체체파리는 극소수의 2세를 낳지만 애지중지 돌봄으로써 생존율을 높인다. 체체파리, 양파리를 비롯해 박쥐의 털에 붙어살면서 피를 빨아 먹는 4, 5종의 작은 무시(날개 없는) 파리는 임신 기간 내내 유충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유충이 다 자라서 번데기 단계로 탈바꿈할 채비를 마치면 출산한다. 또 어떤 곤충은 알을 낳지만 번데기화 할 태세를 갖출 때까지 먹잇감과 돌봄을 제공한다.

◇ 해충과 인간의 끝없는 전투

해충이란 인간 활동을 간섭하는 곤충 종을 말한다. 인간과 몇몇 종의 곤충은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투쟁하며, 그 투쟁이 치열한 것은 인간과 곤충이 얻고자 하는 바가 양쪽 모두에게 더없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우리 인간은 흔히 스스로를 자연의 주인이자 정복자라고 여기지만,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기 훨씬 이전부터 곤충들은 세상을 통제하고 장악해왔다. 그들은 인간이 그들 고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마다 집요하고 능란하게 저지해왔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이 곤충을 상대로 어떤 중요한 우위를 점했다고도 우쭐대기는 힘든 처지다"고 말한다.

인간은 독한 살충제를 살포함으로써 해충을 박멸하려고 했다. 가령 말라리아를 근절하기 위해 살충제를 살포해 모기 개체를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지만, 모기가 DDT에 내성을 키우자 실패로 돌아갔고 이내 대대적으로 재발했다.

그런 사례뿐만이 아니다. 사과나무 과수원에 DDT를 비롯한 여러 살충제를 살포하자, 사과나무 식자곤충을 제어하는 포식자와 기생 곤충마저 죽어버려 새로운 해충과 진드기가 창궐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독한 살충제는 인간 삶의 터전인 자연에 씻기 힘든 큰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지은이는 "곤충은 식물의 수분과 죽은 동식물의 사체 재순환에 이르기까지 지구 상에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약 곤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농업을 비롯한 생태계 전반이 무너질 것이고, 생명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한다. 더불어 지은이는 "곤충을 박멸하려는 시도보다는 살충제 없이 혹은 살충제를 분별력 있게 사용함으로써 곤충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이 책은 인류를 공격하거나 약탈하는 동시에 인류의 공격을 받는 곤충들을 집중 탐구함으로써, 곤충과 인류의 관계,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해충과 싸우는 과정에서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양한 영감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338쪽+화보 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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