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비밀/ 케빈 지아니 지음/ 전미영 옮김/ 더난출판 펴냄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캠핑카 여행을 떠났다. 2년 반 동안. 그가 무작정 떠난 건 건강 때문이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니었다. 진짜 건강법을 찾아서였다. 처음 그가 건강법에 몰두한 건 가족력 때문이다. 두 살 때 아버지를 뇌종양으로 여의고, 고교 졸업 후엔 어머니마저 유방암으로 투병했다. 자신도 심각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그렇게 건강해지려고 독하게 살았다.
미국의 건강 블로거 케빈 지아니가 현실적인 건강법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고 건강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식탁의 비밀'이라는 제목보다 '건강한 음식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건강해지려고 먹었는데 병이 든다니?
저자는 자연건강법 전문가다. 사실은 병마와 사투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건강에 집착하게 된 파워블로거였다. 대학원 시절 자연건강법에 관심을 두고 조사하고 연구하다가 건강, 식품, 영양에 대한 허황한 속설을 파헤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그쯤 되니 생식, 클로렐라, 생명력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생식과 채식, 그중에서도 꿀이나 달걀조차 먹지 않는 비건(Vegan)으로 살았다. 커피, 설탕, 육류를 끊고 그린스무디를 마시기 시작했다. 지방을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를 먹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3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더 건강해질 줄 알았던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아침에 눈 뜨기조차 어려울 만큼 무기력증이 심해졌다. 블로그, 유튜브, 방송에서 건강법을 이야기하던 그의 말이 거짓말이 된 셈이다. 완전히 잘못됐다고 깨달았고, 그 길로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이 책은 건강서이면서 동시에 탐사기다. 그는 자연주의 식생활을 고수하는 문화권, 전통 식생활이 장수의 비결인 문화권을 찾아다니며 공부한다. 페루의 안데스산맥. 멕시코의 소금광산. 미국 캘리포니아 돼지농장을 돌아다닌다. 스트레스에 찌든 자신의 뇌를 스캔하며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보고, 5일간 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단식으로 장을 치유하기도 한다. 가시철조망을 기어가고, 전기충격까지 받는 '터프머더'라는 극한의 스포츠까지 병행하며 건강해질 방법을 찾는다.
그러다가 만난 한 자연요법 한의사가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부신에 이상이 있으니 동물성 단백질을 좀 먹어야 돼"라고 야박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비건식을 포기한다. 곧바로 유기농 단백질을 섭취한다. 이번엔 폭식이다. 깡마른 채식주의자가 28㎏이 더 쪄 살찐 블로거가 되기까지는 1년 반이 걸렸다.
양극단을 오간 저자가 그가 방문했던 곳, 만난 사람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에 다시 집중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잡식동물이다.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도 채식만 하는 곳은 없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비건식은 일상식이 아니라 치유식이라고 주장한다. 현대화된 육류 생산체계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기를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붉은 살코기가 몸에 좋지 않다는 말도, 내장은 버려야 한다는 믿음도 모두 거부하면서 필요한 만큼 먹기를 제안한다.
그는 술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사케를 즐기는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을 보고 장수의 비결에 의문을 품는다. '글루텐 프리' 열풍에 던지는 질문도 같다. 글루텐 민감증의 원인을 다른 음식과의 조합으로 돌리기도 한다. 유당불내성이 있는 사람, 카페인 대사 속도 조절 효소가 부족한 사람은 그만의 식이가 필요하다는 것. 독소가 없는 음식을 먹고, 유전자조작식품(GMO)을 피하고, 덜 짜게 먹고, 소금을 먹으려면 바닷소금을 먹으라고 한 그는 마지막 장에서 명민하고 젊고 호기심에 찬 상태로 뇌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후의 비밀이다.
자연건강법 전도사인 그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식단도 내키는 대로, 와인도 적당히, 운동은 설렁설렁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어난 체중이 줄었고, 일과 건강은 균형을 잡았다. 스트레스 없는 일상생활이 그의 '식탁의 비밀'이 됐다.
책의 원제는 '케일과 커피'(Kale and Coffee)다. 케일로 만든 그린스무디에 빠졌고, 부신을 망친다는 말에 15년 전에 커피를 끊었던 저자는 커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핀란드 한 연구에 따르면 커피가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낮춘다고 하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파킨슨병 발병률을 낮춘다고 한다. 커피에 포함된 폴리페놀이 질병과 노화를 유발하는 활성산소를 공격한다는 것도 꽤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는 주의해야 한다. 잔류 농약과 카페인, 그리고 가공 과정에서 늘어나는 곰팡이독소 때문이다. 밤잠을 설치거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것도 커피지만, 커피가 몸에 잘 맞는 사람도 있다. 카페인 대사 속도를 조절하는 효소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케일도, 커피도 결국은 먹는 사람에게 적당하고 적합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레몬디톡스, 덴마크다이어트, 슈퍼푸드, 고단백질식사요법…. 좋은 음식은 넘치는데 건강은 걱정이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 그의 답은 어쩌면 뻔하다. 비건식은 왜 안 되고 독이 되는 운동이 무엇인지, 커피는 왜 골라 마셔야 하는지를 늘어놓은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예로 든다. 평생 화학물질에 노출된 곳에서 일하고 월마트에서 산 가공식품만 먹었던 그의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두뇌 회전이 빨랐다고 한다. 결국,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344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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