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방산비리 척결나서
이전 정권의 방식 똑같이 되풀이
강력한 처벌만이 해결책은 아냐
비리 유형별 분석 대응책 세워야
"'방산비리'는 단순 비리를 넘어 안보에 구멍을 뚫는 이적행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검찰은 즉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방산비리 척결을 위한 수사에 나섰다. 무기 조달 등 방위산업에 비리가 있다면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엄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이 당연하다.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여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찜찜한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 어디선가 보았던 장면의 되풀이, 이른바 데자뷔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10월 29일 국회 연설에서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방위사업 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곧바로 출범했다. 경찰, 검찰, 군검찰 등 100여 명의 인력이 1년간 활동하면서 전'현직 장성급 11명 등 무려 77명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기소된 장성들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은 1'2심 모두 무죄, 최윤희 전 합참의장은 1심 유죄, 2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가 나왔으니 방산비리 수사와 처벌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방산비리에 대처하는 정부의 방식이 과거와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박근혜정부만이 아니다. 이명박'노무현정부도 정권 초기 방산비리 수사에 매달렸다. 이처럼 정권마다 방산비리 척결이 반복된 결과는 무엇인가. 국민들의 뇌리에 '방위산업=비리의 온상'처럼 각인된 부정적 효과 외에 나아진 게 있나. 그 정도 수사와 처벌이 계속되었으면 어지간한 비리는 방산업계에 발도 못 붙일 정도가 되었어야 한다. 이번에도 대통령과 검찰이 방산비리를 다시 겨냥한 것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2015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장명진 전 방위사업청장은 대표적인 방산비리가 뭔지 묻는 질문에 "하도 많아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을 책임진 공직자로서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었다. 이처럼 흐릿한 문제의식이야말로 방산비리의 온상이라 할 수 있다. 방산비리로 알려진 사안들을 살펴보면 비리라는 단순한 말로 뭉뚱그리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다. 물론 기밀 누설, 뇌물수수, 허위서류 작성 등의 부정과 비리가 있다면 이를 정확히 밝혀내야 한다. 전 정권 인사든 누구든 비리 관련자에 대해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적 의도 운운할 필요는 없다.
비리라기보다 역량 부족인 경우도 있다. 기술적 역량이 따르지 못하는 데도 의욕부터 앞세우는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수리온 헬기나 한국형 전차 개발 등이 그렇다. 선진국에서 수십 년 걸려 개발한 무기를 10여 년 만에 완성하려는 것은 과욕이다. 이를 비리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담당자들의 비리와 무기 자체의 개발 과정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 차세대 전투기 등 천문학적 규모의 해외 무기를 도입하면서 우리가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계약 등 행정 능력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무기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협상, 계약 전문가를 키울 필요도 있다. 전역자와 현역 담당자의 유착관계가 문제라면 그에 대한 대응책도 강구해야 한다. 방사청과 국방부 관련 부서가 현역 군인들로 채워져 있는 문제도 이른바 '문민화'로 해결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른바 '방산비리'로 알려진 모든 사안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개별적인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강력한 처벌만으로 방산비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만 이번 수사가 또 한 번의 도돌이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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