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문학 책에는 소설 '완득이' 바로 다음에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이 나온다. 기말고사를 치고 난 다음 여유가 있을 때 학생들에게 영화 '완득이'를 보여주는데, 두 작품에는 크게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완득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마지막에 교회에서 다문화센터 개소식 잔치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장애인, 바보, 문제아, 모범생, 제멋대로인 선생, 욕쟁이 화가, 외국인 노동자, 노인, 아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어우러진다. 평소에는 갈등도 많았던 사람들이지만 신명이 나는 그 순간만은 하나가 되고, 우리는 공동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여우난골족'이 보여주는 세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명절날 어린 '나'는 이름부터 뭔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여우난골에 있는 큰집에 간다.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렇게 제각각 다른 가족들이 모여 있고, 잔칫날처럼 음식도 풍성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밤늦게까지 놀이를 하고,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한 방에 웃고 떠들며 논다. 그때의 '나'는 아침 해가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들어올 때까지 엄마들이 끓이는 무이징게국 냄새를 맡으며 행복하게 잠을 잔다. 이 시에서도 보이듯 '공동체'라는 것은 유사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잔치를 통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근심을 잊을 수 있는 풍성함이 있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잔치의 순간만은 모두가 평등한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직장에는 잔치와 비슷한 회식이 많다. 회식은 공동체의 잔치가 되지 못하고 그냥 업무의 연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회식에는 풍성함은 있지만, 그 순간에도 모두가 평등한 관계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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