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박정희와 박근혜를 분리하라

공칠과삼(功七過三).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평가다.

대약진운동으로 최소 3천만 명이 굶어 죽었고 문화대혁명으로 1억 명 이상이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어두운 역사가 마오 시대에 벌어졌음에도 중국은 마오에 대해 공칠과삼이라 하고 천안문 광장에 마오의 사진을 내걸고 있고 시신도 영구 보존하고 있다. 중국 역사가 30년 이상 지체되거나 퇴보했다는 평가가 따르는데도 말이다. 아들을 불구로 만든 덩샤오핑은 물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가족 역시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무사하지 못했지만 마오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변함이 없다.

중국은 마오의 과삼(過三)보다는 공칠(功七)에 무게를 싣고 있다. 마오가 없었으면 오늘의 중국은 없다는 것이 중국의 분명한 입장 정리다. 덩샤오핑은 1978년 "만약 마오쩌둥 동지의 지도가 없었다면 중국인들은 흑암 속에서 오랜 세월 더듬거린 후에야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고 중국 현대사 문제에 대해 '불가역적'인 못을 박았다.

물론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또 극과 극으로 나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1년 만에 정부 기관에서 손바닥을 확 뒤집은 건 좀 그렇다.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취소 이야기다. 지난해 5월에 만장일치로 결정한 일을 1년 만인 올해 7월에는 같은 사람들이 모여 찬반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한다. 심의위원들의 철학과 역사관이 1년 만에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뀐 건 아닐 터이다. '한 대' 쥐어박히고 결과를 뒤집었거나 바뀐 정권 눈치 보느라 알아서 긴 결과라는 것 말고는 다른 해석을 찾기 어렵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 역시 공과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조국 근대화의 기틀을 세우고 고도 성장의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 놓아 오늘날 대한민국의 풍요와 위상을 있도록 한 영웅이라는 평가가 앞선다. 반면 쿠데타로 집권하고 독재와 공포정치로 일관하다 비극으로 끝난 인물이라는 혹독한 평가 역시 공존한다. 그게 역사다. 기념은 기념이고 반성은 반성이어야 한다. 기념으로 반성을 가릴 수 없고 반성이 기념을 뭉개서도 안 된다.

한국판 '공칠과삼'은 불가능한가. 마오처럼 박정희를 평가할 수는 없나. 공과 과는 공존할 수 없는가.

기념우표 발행의 주체도 정부가 아니라 구미시다. 구미는 박정희의 고향이다. 구미가 전자산업의 메카가 된 것은 박정희의 공이다. 구미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의 도시다. 그런데 오는 1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준비하던 기념사업과 주요 행사들도 발행이 취소된 기념우표와 같은 운명에 처할 위기라고 해서 씁쓰레하다. 어디 박정희 우표 발행 건뿐이겠나. 게다가 아버지 덕으로 대통령이 된 딸 박근혜 시대가 국정 농단 논란 속에 중도하차한 게 박정희 시대 격하의 원인 제공자 역할을 하고 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 박정희와 박근혜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국가주의 망령과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박정희 신화를 부활시키자는 게 아니다. 공과를 있는 대로 제대로 평가받자는 거다. 그리고 역사 앞에 겸손하면 되는 것이다. 중국의 '공칠과삼'처럼. 딸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박근혜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나 동정심이야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역사적 평가는 달라야 한다. 냉정해야 한다. 언제까지 박근혜만 붙잡고 있다가는 보수 진영 전체가 다 같이 망하고 만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박정희와 박근혜의 분리는 문재인정부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부녀지간이라고 한통속으로 묶으려 해서는 곤란하다. 딸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건 또 다른 연좌제일 수 있다.

과도한 미화와 신격화, 우상화가 아니라면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행사가 잘 치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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