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정부 원전정책 성토
"우리가 언제 달라고 했습니까? 자신들이 마음대로 가져다 놓고 잘했니 못했니 떠들고만 있습니다. 지방은 중앙정부의 세입자가 아닙니다."
한울원전이 들어선 울진군 북면. 이곳에는 도로를 따라 각종 현수막이 가득 메웠다. 대부분 신한울원전 3'4호기의 조속한 착공을 촉구하는 글들이다. 지금껏 원전 밀집지역으로서 피해를 항변해온 울진에서 나온 내용치고는 의아하게 보인다. 그러나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부동산 등 지역경제 침체 여파가 현실로 닥친 상황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현실로 만들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마주한 울진은 현재 물밑에서 조용히 들끓고 있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매번 중앙정부의 논리에 휘둘려온 지역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지난 정부의 에너지수급정책에 따라 결정된 신한울원전 3'4호기 신규 건설사업은 애초 3호기의 경우 2022년 12월, 4호기는 2023년 12월 준공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수원은 지난 5월 중순 신한울원전 3'4호기의 설계용역 업무를 잠정 보류한다고 밝혔다. 2014년 11월 한전기술㈜이 수주를 맡아 2년여간 진행된 사업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건설이 중단된다면 4천300억원의 설계용역비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신규 원전 건설이 불투명해지자 가장 불안해하는 곳은 바로 부동산 업계다. 특히 신한울원전 3'4호기 예정부지였던 북면 고목리는 직격탄을 맞았다. 올 초까지 고목리는 부동산 실거래가격이 5배나 껑충 뛰면서 특수를 노린 사람들이 몰렸다. 종전에 85명이 살던 조용한 시골마을이 5년 사이에 409명으로 4.8배나 불어났다.
아직 직접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발표된 이후 이곳의 부동산 거래는 완전히 중단됐다. 이미 투자를 마친 사람들은 행여 다시 건설사업이 시행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로, 신규 투자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모두 거래를 꺼리고 있는 까닭이다.
한 주민은 "원래 투자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아 실제 거주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간혹 들르는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겨 그야말로 유령마을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투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탓에 이곳의 피해를 크게 부각시키는 여론은 적다. 그러나 8조원이나 투입되는 신규 원전 건설 중단 결정이 지역경기의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입장이다.
원전 건설 금액이 모두 지역에 투자되지 않는다고 해도 원전 가동으로 인해 창출되는 지역의 수익은 만만치 않다. 지난해 한울원전은 지역자원시설세 등 672억원의 지방세를 울진군에 납부했다. 울진군 연간 세수의 68%가량을 차지하는 규모다. 아울러 신한울원전 1'2호기 건설에 따른 특별발전기금 등 2천억원이 넘는 돈이 울진지역에 투자되기로 약속됐다.
그 때문에 현재 탈원전 정책 수순을 바라보는 울진 주민들의 시선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원전의 위험과 피해를 감내하면서도 이들로 인해 지역경제를 꾸려왔던 주민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에너지상생포럼 경북지부 울진지회는 성명을 발표하고 "울진지역의 고용창출과 경제발전을 위해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이 예정대로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울진은 교통오지 지역으로 각종 여건상 신규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어차피 원전을 전량 폐기하지 못할 바에야 신규 건설을 통한 각종 재정지원에 힘입어 오히려 울진을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다른 사회단체인 '핵으로부터 안전하고 싶은 울진사람들'은 비슷한 시기에 "지난 30여 년간 원전으로 인해 울진군민이 받은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원전은 농어촌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생태문화관광도시로 발전하는 데 발목을 잡았으며 유무형의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며 정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처럼 지역사회가 찬반으로 나뉘어 극명히 대립하는 중에서도 공통적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사항이 있다. 지역을 무시한 중앙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다.
임광원 울진군수는 "처음 원전이 들어설 때도, 이번 건설 철회 결정에도 지역의 의견은 누구도 묻지 않았다. 억지로 가져다 놓은 기피시설을 이제 와서 위험하니 어쩌니 하는 것도 우습지 않나"며 "지역의 힘이 없어 매번 중앙정부의 기침 한 번에 크게 요동친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기피시설을 끌어안은 지역민들의 의견을 깊이 공감하고,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울진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영덕, 피해 보상 목소리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처음 발표됐을 때 집단행동 움직임마저 보였던 영덕천지원전 편입부지 주민들은 다소 체념한 모습이다. 다만 지금껏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전 부지 중 민가가 가장 많은 영덕읍 석리 일대 주민들은 해수목욕탕 펜션, 해안 레일바이크 등 주민 소득 증대 시설 설치와 함께 상수도 시설 및 재해방지책 등을 최근 영덕군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지원전 편입지주 A(65) 씨는 "원전이 들어서면 평생 터전인 고향이 없어지는데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군에서 나랏일이라고 해서 도장도 찍어줬었다. 당시엔 도장을 안 찍어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며 "그런데 이젠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원전 찬반 여부를 떠나서 화가 난다. 지방사람들이라고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반드시 5년간의 피해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원전의 불똥은 실물경제에도 튀었다. 원전 1기를 건설하려면 기술자와 인부 등 수천 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원전 특수의 1차 수혜자는 부동산 업계라는 말까지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원전부지 고시 이후 지역에선 아파트와 크고 작은 원룸 건축이 붐을 이뤘다. 이후 원전 찬반여론 탓에 시끄럽기는 했지만 '순진한' 영덕 주민들은 대선이 끝나고 난 시점까지도 '설마' 하며 천지원전 건설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그러나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발표되자 부동산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2013년 말 분양한 영덕읍 한 고층 고급 아파트는 한때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미분양으로 골칫거리다. 영덕읍'영해읍'강구면 곳곳에 최근 잇따라 들어선 소형 아파트와 원룸에도 빈 방이 수두룩하다.
영덕읍 부동산업자 B(55) 씨는 "탈원전 이야기가 나온 뒤 거래가 뚝 끊기고 호가도 20~30% 이상 떨어졌다. 빚을 내서 집을 지은 사람들이 줄줄이 부도날 판이라는 말까지 나돈다"고 했다.
영덕군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국책사업이어서 뾰족한 대책도 없다. 영덕군은 우선 원전자율유치특별지원금 380억원을 원전 편입부지 주민들을 위해 사용할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돈은 영덕군에 들어와 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이 있어야 쓸 수 있다. 향후 원전과 관련된 정부의 로드맵이 정해지는 대로 영덕의 처지를 설명하고 특단의 지원책을 요구하면서 380억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건의할 방침이다.
영해면 주민 C(57) 씨는 "현재로선 천지원전 건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영덕군 스스로 지역발전을 도모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군민들도 함께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영덕천지원전 준비실 관계자는 "여태껏 원전 계획 백지화나 원전지원금 반납 여부 등을 겪어보지 못했다. 모든 것은 정부의 구체적 로드맵이 나온 후에나 알 수 있다"며 답답해했다.
영덕 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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