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10일 오후 청송군보건의료원 옆 (사)청송군장애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오치규(49) 씨는 자신이 귀촌한 이유를 설명했다.
오 씨는 "조카가 농촌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곧잘 했고 수능에서 수학을 1등급 받을 정도였다"며 "하지만 영어를 3등급 받아 수도권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 씨에 따르면 그의 조카는 학교에서 수학뿐만 아니라 영어 등 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수능에서 유독 영어만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이것에 대해 그는 "수도권 학생과 비교했을 때 학습의 깊이가 차이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수년간 사교육계에 몸담았던 그는 수도권과 농촌을 비교했을 때 사교육 학습의 깊이 차이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는 수많은 학원과 사교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학생들이 취약한 부분에 대해 '선택'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 반면 농촌에는 겨우 읍 정도 큰 마을에 한두 개 학원이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고 그 밖의 동네에 사는 학생들은 공교육에서 부족한 공부를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이런 학생들의 부족한 공부를 가르쳐 주려고 3개월 전 서울에서 짐을 꾸려 청송으로 내려왔다.
◆교육자 집안의 오치규 씨…군 시절도 청송에서 공부 가르쳐
오치규 씨는 청송군 부남면에서 청송자동차고등학교를 설립한 고 오두희 교장의 차남이며 현 오인규 교장의 동생이다. 어린 시절 청송에서 자랐고 대구에 유학해 대건고를 나오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오 씨는 아버지로부터 금전적으로 완전히 독립해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비를 마련했다. 이 때문에 학비 외에는 쓸 돈의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주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겨울에는 난방비가 없어 문짝을 뜯어 바닥에 깐 다음 그 위에서 잠을 자거나 책상 위에 쪼그려 자기도 했다는 것. 추워서 울기도 했다는 그는 당시에는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에는 유난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서울까지 유학 와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농촌 출신 친구들은 다들 넉넉한 집안 사정이 아니라서 나처럼 학원이나 과외 등으로 학비를 벌어 생활했다"고 말했다.
오 씨는 대학 시절 방학이면 늘 아버지 학교에 내려와 일을 도왔고 군 시절에도 고향에서 방위로 근무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공교육에 몸을 담고 있던 아버지와 형의 모습을 늘 지켜보면서 그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의무가 돼 버려 사교육에 발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오 씨는 "젊은 날 도시와 농촌에서 모두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농촌 학생들이 학습에 있어서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원을 직접 운영하면서도 고향과 농촌에 내려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풍족하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고 말했다.
◆스텝 스터디 자기주도학습
오치규 씨는 현재 자신이 개발한 스텝 스터디로 지역 학생 100여 명에게 무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텝 스터디는 말 그대로 수준별 학습이다. 오 씨는 농촌 학생들이 가장 취약한 영어 과목을 총 7단계로 나눠 학생들에게 무료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청송 등 농촌은 학원이 별로 없고 비용 부담도 크다"며 "밤낮으로 농사일이 바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 공부 관리를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EBS나 인터넷 강의는 한 방향 수업이기 때문에 질문도 할 수 없고 모르면 그냥 넘어가야 한다"며 "이렇게 공부에 소외된 농촌 학생들은 농촌을 벗어나는 고등학교 이후에 수도권 학생들과 큰 실력 차이를 보이게 된다"고 강조했다.
오 씨의 스텝 스터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한 학습법이다. 오 씨를 직접 찾지 못하는 학생들은 동영상 강의를 스마트폰이나 이메일로 받아 듣고 주기적인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이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다. 동영상에는 강의 내용을 노트로 정리하는 과정이 들어 있고 오프라인 강의는 이 동영상 수업에서 궁금한 점을 중점적으로 질의 응답하게 된다. 학생들은 수준별로 수업이 다른 동영상 강의를 듣고 반복해서 적고 읽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스텝 스터디는 주중뿐 아니라 주말에도 운영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매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오 씨는 자신이 지도하는 전 학생에 대해 생활기록부를 쓰고 맞춤형 지도와 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오 씨는 다문화가정에 '한국 알기'라는 강의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기초적인 상실을 10분 정도 동영상으로 만들어 제공하면서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 등이 한국문화를 배우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동두봉사회 후원과 집필 저술 인세로 학생들 가르쳐
오치규 씨는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들과 함께 청송읍 내 한 식당에서 기거하고 있다. 지난 4월에 내려왔을 때는 문을 닫은 폐 교회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잘나가던 사교육계 원장님인 오 씨가 어렵게 생활하는 것은 바로 '최소 생활'이라는 그의 원칙 때문이다.
그는 "무료 강의를 위해 우리 가족은 최소한의 생활을 원칙으로 정하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라며 "아이들도 처음 내려와서 일주일은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내 생각을 존중하며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치규 씨의 또 다른 직업은 작가다. 지금까지 '오치규 선생의 성적역전 몸 공부법'과 '다시 개천에서 용나게 하라' '삼국지 권력술' '유방의 참모들' 등으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가 책을 쓰게 된 이유도 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와 용기 등을 주기 위해서다. 이 책을 판매하면서 들어오는 일부 인세로 학생들의 무료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동두봉사회'도 오 씨를 후원하고 있다.
'동두봉사회'는 의성 경애원에서 한센병 목회를 하다 급류에 떠내려오는 두 명의 아이들을 구한 뒤 숨진 고 오동희 목사와 농촌 교육에 헌신한 오 씨의 선친 오두희 교장의 희생'헌신 정신을 이어받아 실천하는 봉사 모임이다. 이들 이름의 중간 자를 따서 '동두봉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국에 분포된 동두봉사회 회원들이 오 씨가 농촌에서 무료강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1만원에서 몇백만원까지 후원하면서 지금까지 강의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서 청송군장애인연합회 사무실을 임시로 빌려쓰고 있다.
그는 "한 번에 30~40명씩 수업을 하는데 일부는 책상이나 소파에 앉아 하지만 나머지는 바닥에 책을 깔고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소문을 듣고 안동과 영양 등에서도 학생들이 배우러 오고 청송 학생들도 계속해서 숫자가 늘어나는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학생들이 손쉽게 드나들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지금은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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