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암스·요한 스트라우스 음악이 흐르는 음악 감상실
옆에 앉은 경대 의대생이 손을 지그시 잡네
에그머니나 이걸 우째 그냥 있어야 되나, 빼야 되나…
◆순진무구(순수하고 진솔하며 무진장 구수)한 이야기
여자 한 명 모자란다고 빨리 나오란다. 런던제과 3시까지. 공돌이(공대생)는 촌에서 온 애들이 많은데 또 얼마나 고리타분할까. 제발 교련복 안 입고 나오면 좋으련만…. 어쭈구리 생각보다 깔삼한데. 땟국물도 안 흐르고 하늘색 남방 입고 하얀 얼굴에 바람머리까지 한 남학생이 눈에 확 띄네. 얌전한 척 오만상 내숭녀 명숙이도 있군. 완전 화장발 잘 먹었다. 저기 먹순이는 소보루빵에서 눈이 떨어지지를 않네. 커다란 오봉에 팥빵 튀김도나스, 꽈배기, 크림빵. 그래 나는 오늘 5개만 먹자.
자기 물건 하나씩 짝짓기의 시작. 나는 나를 폼 나게 보이는 만년필을 내었다. 잉크도 빵빵하게 넣어서 국민교육헌장 애국가 4절 다 쓸 수 있다. 목마와 숙녀 어제 다 외었지. 버지니아 울프가 뭔 말인지는 모르지만 애처로운 소녀일 듯…. 드디어 짝짓기가 끝났다. 팥빵 3개밖에 못 먹었는데…. 내 최고기록이 11개인 줄 알면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을 거야. 전부 일어서서 가려는데 명숙이 표정이…. 옆에 애 보니 땟국물 안 빠진 마산 촌놈이네. 내 파트너를 왜 자꾸 보지. 애고 그러고 보니 내 꺼가 젤 낫네. 밖에 나가니 비가 오네. 잠바를 벗어 머리에 씌어 주기까지 매너까지도 있고. 바로 옆에 아줌마가 비닐우산도 파는데. 팔군식당으로 갔다. 돼지고기와 소주 딱 3잔만 먹자. 올 파트너가 맘에 드니깐 저번처럼 내가 옴팍 덤터기 쓰지는 않겠지. 둥근 철판테이블에 둘이서 안주 아낀다고 깡술로 소주 두 잔째, 분위기 잡으려는데 마산 촌놈이 들어온다. 그 뒤에 또 한 놈, 한참 뒤에 한 놈 더 합세. 이것들이 눈치도 없이. 좋다, 내가 4명 다 상대해 주마.
어디선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울려퍼지고 있다. 동아백화점 옆 좌판에서 여학생과 물건 흥정하다 벌떡 일어서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려 태극기가 펄럭이는 곳을 향하여 경건하게 선다. 우리 모두 일시정지에 걸린 것처럼 다들 태극기를 향해…. 둘이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물건을 나르더라도, 자전거 타고 가도 세우고 우리 모두 가장 애국심이 불타오르는 시점이다. 국가가 우리한테 엄청난 삶을 준 것 같다.
교동시장 2층서 꽃무늬 원피스를 하나 샀다. 주머니 하나 달고 리본만 붙이면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헵번 원피스가 된다. 뿌듯한 마음으로 소라 파는 집으로 GO. 아주머니 왈, 오늘은 특별히 2개 더 준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저번 주와 똑같은데…. 새콤한 초장이 가득 든 큰 종지. 너나 나나 누구나 예외 없이 들락날락. 소라를 조그마한 포크로 푹 찍어서 먹는다. 침이 섞이든지 말든지. 소라의 새콤 향긋 비릿한 맛에 우리는 빠져들고 있었다.
송죽극장 앞에서 원화와 민영이를 만났다. 술이나 한잔하자는데 야들이 술을 먹을 줄 아나. 나도 그렇고. 우리의 술 실력은 서로 너무나 잘 아는데. 좋다. 이제는 눈치 안 보고 먹어보자. 다들 좀 늘었겠지. 언제나 폼 나게 진로 한 병, 전 한 접시, 오징어무침, 우동 2개, 조기 3마리. 안주는 다 먹었지만 술은 3분의 1이 남았다. 우리 3명 다 혓바닥이 꼬여서 횡설수설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술을 남기기로 합의를. 술 앞에서는 너무나 약해지는 청춘이다.
무슨 학교가 본수업 하기 전에 새벽 보충수업 2시간, 본수업 6시간, 2시간 보충수업, 야간자습 3시간. 일어나서 돌아다니지를 못해 엉덩이만 커지고 있다. 저 농땡이들은 그 긴 시간 동안 뭘 생각하고 있을까. 영어를 읽고 단어 숙어 문법에 수학을 풀려고 낑낑 대는 열심히 공부하는 나도 고역인데. 자! 오늘은 땡땡이를 한번 쳐 보자. 화장실로 통하는 수성초등학교로 담을 건너가면 된다. 수위 아저씨가 거기로는 감시망이 없다. 2층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가방도 던지고 육중한 몸도 함께 던졌다. 3명 다 다리 부러진 데 없이 무사히 착륙을 했다. 영광의 탈출!
수성못을 배회하다 극장영화 보러 가잔다. 꼬깃꼬깃한 비상금 탈탈 털어 보았다. 일단 시내로 가자. 토큰은 각자 있으니 대구극장 담배 두 갑으로 입구의 아저씨와 정애가 한참을 어쩌구저쩌구 한다. 드디어 우리에게 오라고 손짓을 한다. 역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다. 라이언 오닐과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의 권투선수와 매니저의 황당한 사랑 이야기. 코가 저렇게 못 생겨도 돈이 있으니 잘 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가 있구나. 나의 돼지코도 희망이 보인다. 또 하나의 협상의 법칙도 배웠다. 역시 학교 밖에서는 삶의 실용성을 배울 수 있을진대. 내일 아침 담임쌤한테 열나게 까일 생각은 죽어도 나지 않았다.
청송 엠티 갔다 와서 의대생 동길이가 보잔다. 엠티에서 대현이가 진희한테 하도 설쳐대는 바람에 우리는 아무 짓도 못 했다. 텐트 밖에서 모기한테 얼마나 헌혈을 했는지. 회원이는 계속 성희를 그리워하며 통기타만 친다. 시내 녹향서 둘이 나란히 앉아서 뭔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브라암스의 피아노 연주,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소리, 그리고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디제이의 설명도 장황하게 나오고 있다. 한참을 침 튀어 가며 대현이를 죽이고 있는데 손을 지그시 잡네. 에그머니나 이걸 우째 그냥 있어야 되나, 빼야 되나. 길다란 손가락과 삐쩍 마른 참 없어보이는 경대 의대 남학생이다. 계속 저의 아버지 이야기, 아니 아버지가 의사라면서 왜 그리 죽도 못 먹은 것처럼 말랐냐. 어~ 저기 내 아는 애 상대 경영학과 상민이가, 억시로 못 생긴 애 델고 멀하지. 손 보려니깐 얼릉 내리네. 야! 나도 잡혀져 있다. 컴컴하니 손 잡고 잡히는 데는 감상실이 딱이지.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가 잘 들리지가 않네.
고등학교 담주 졸업이라고 형덕이가 시내 가잔다. 자기 쌍둥이 동생들과 같이 간 곳은 백마강 입구에 닭들이 꼬챙이에 끼여서 막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네. 우와 한 마리도 아니고 열 마리씩…. 역시 형덕이는 모르는 게 없고 시내 곳곳을 다 아네. 앞으로도 대학 가면 형덕이의 자세한 가르침을 받아 우뚝 서는 나라의 역군이 되어 시대를 앞장서는 여전사가 돼야지. 속살이 요로코롬 뽀얗고 쫄깃한 게 아~ 다시 한 번 덕이가 너무나 크게 보인다. 쟈는 낸중에 시대를 앞서가는 특별한 보스가 될 거야.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보스!
글을 읽으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그려질 겁니다. 부당한 일을 당연한 것처럼, 친구의 어려움을 같이 힘들어하고 우정이란 미명 아래 황당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동참하고 어려운 여건과 힘든 사회적 환경에서 언제나 즐거웠던 것처럼…. 우리는 지나온 정치적 사회적 제도의 변화를 굳건히 이겨내고 또 다른 시대를 맞아 앞으로도 더욱더 열심히 살 것입니다. 우리는 50대~~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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