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까지만 해도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은 100년, 아무리 빨라도 50년은 걸릴 것이라고 당시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에게 '장담'했다. 바이츠제커 역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믿었지만,그 시점이 생전에 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세계의 모든 사람이 그랬다. 단 제임스 P. 오도넬이란 미국의 저널리스트만 빼고.
그는 1979년 1월 서독의 리더스 다이제스트인 '다스 베스트'(Das Beste)에 기고한 '베를린의 유령 기차'라는 기사에서 10년 후 장벽의 붕괴를 예측했으며, 기념품으로 팔릴 벽돌 조각의 가격까지 맞췄다. 이런 족집게 예측은 역사상 거의 유일한 사례다. 대부분의 예측은 형편없이 빗나갔거나, 무엇을 예측할지부터 몰랐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전간기(戰間期, 1919∼939)의 저명한 영국 외교관 로버트 세실은 1931년 9월 10일 국제연맹 총회에서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전쟁의 가능성이 낮은 시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8일 후 일본은 2차 대전의 서막인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1917년 1월 스위스에 망명 중이었던 레닌은 취리히 대학 강연에서 "우리 늙은이는 다가올 혁명의 결정적 투쟁을 죽기 전에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한탄했다. 6주 후 러시아 혁명이 터졌다.
경제 예측도 다르지 않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새뮤얼슨은 1961년 소련의 국민소득은 1984년, 늦어도 1997년 미국을 제칠 것이라고 했다. 틀렸지만 그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1981년에 그 시기를 2002년이나 2012년으로 늦췄을 뿐 여전히 소련의 추월을 고집했다.
전투적 환경론자 폴 에얼릭의 예측 실패 역시 참담하다. 그는 1990년 구리'크롬'니켈'주석'텅스텐의 10년 후 가격을 놓고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과 1천 달러 내기를 했다. 결과는 60% 폭락. '상승'에 건 에얼릭은 '하락'에 건 사이먼에서 내깃돈 중 하락률만큼의 576달러를 조용히 송금했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장기 전력수요 예상치가 2년 전에 세웠던 것보다 무려 10%나 줄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 저하를 감안한 수정이란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탈원전'을 위한 '맞춤형 예측'이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예측 실패의 참담한 결과를 생각하면 제발 그 예측이 맞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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