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맹

논산'평택에서 8주간의 훈련 후 본대에 도착한 것은 1982년 초가을이었다. 펭(Peng)이라는 성을 가진 중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했다. 인디언 혈통으로 오인했지만 그는 중국계로 성이 팽(彭)이며 '펑'이 본디 발음이라는 것을 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펭 대위는 땅딸막한 키에 수더분한 인상을 가진 직업 주한미군이었다. 검붉은 얼굴에 늘 굳은 표정이었으나 엄하게 명령하거나 간섭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병사들은 그의 외모에서 약간의 친근감을 느꼈다. 이따금 밝은 미소가 상대의 경계심을 늦춰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미군 장교였다. 일 처리 등 규정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막사를 공유한 미군 사병들은 사고도 치고 규율을 어겼지만 장교들은 달랐다. 대부분 바르게 처신했고 일 처리도 분명했다.

30년이 훨씬 넘은 기억 속에서 펭 대위를 떠올린 것은 주한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완료를 앞두고 시설 공사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이 미군 일 처리에 혀를 내둘렀다는 보도를 접하고서다. 해외 건설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우리 건설 업체들이 미군과의 사업에서 문화 차이를 겪었다는 것은 다소 의외다. 하지만 설계도나 계획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그들 방식에 비춰보면 형편과 사정이 끼어드는 우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최근 8군 사령부가 옮겨간 평택은 미군 해외기지 중 최대 규모로 여의도의 5.5배다. 건물 513동이 신축되고 기존 기지 면적보다 3배가량 더 커졌다. 그러나 우리와 얼굴을 맞댄 지 70년을 넘긴 주한미군은 과거와는 또 다른 묘한 위치에 서 있다.

피아식별장치(IFF) 논란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한미 연합훈련 시 필수인 피아식별장치 성능 개선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청와대가 경과를 조사 중이다. 이 장치는 적 항공기나 함정을 식별하는 장치다. 미군은 2010년 '모드5' 개량 사업에 들어가면서 우리 군에 여러 차례 사업 참여를 통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 측 사업이 계속 지연되다 2014년 뒤늦게 시작돼 그만 엇박자를 낸 것이다. 이대로면 앞으로 6년간 피아식별이 어려워 육안이나 암호로 해결해야 한다. 양측 해명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은 단순히 양국 문화 차이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조금씩 틀어진 미묘한 양국 관계가 배경일 수도 있다. 이제 한미 관계도 보다 냉정하고 엄격한 시각에서 개량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