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팔공산 자락에 바람길이 열린다. 계곡을 따라 선선한 공기가 일어난다. 바람이 능선을 넘는다. 봉우리에 서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눈앞에는 시원한 경치가 펼쳐진다. 도로와 강 등 불빛이 곡선을 그리며 밤을 수놓는다. 산골 마을의 전등은 반딧불처럼 점점이 반짝인다. 한여름 해가 지면 산으로 가자. 오를 때 쏟아낸 땀이 증발하듯 식는다. 탁 트인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름밤 팔공산 자락으로 야행(夜行)을 떠나자.
◆팔공에서 길을 묻다
팔공산은 전국적인 명산이다. 대구를 비롯해 경북 군위와 영천, 경산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비로봉(1,193m) 정상을 중심으로 동서 능선으로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옛 이름은 공산'부악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의 전투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곳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해 전사(戰死)하는 등 8명의 장수가 목숨을 잃은 탓에 팔공산으로 부르게 됐다.
팔공산은 종 모양의 산형을 이루고 있다. 남쪽은 완만해 응해산(526m)과 응봉(456m) 등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사이에 하천이 흘러 동화천에 모여 금호강으로 흐른다. 계곡이 아름답고, 동화사와 은해사, 송림사 등 사적이 많아 19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북쪽에 위천 상류인 남천이 흐르고, 동쪽에 한천과 신녕천이 있다.
팔공산 중 남쪽으로 뻗은 자락에 용암산(383m)~능천산(380m) 구간이 있다. 금호강과 가까운 이 구간 중 대암봉(465m)이 눈에 띈다. 용암산 지릉인 옻골재(315m)를 거쳐 오르는 길이 아름답다. 옻골재와 대암봉 사이에 416m 봉우리가 있다. 아랫부분이 바위 풍광으로 이뤄져 있다. 대암봉 정상은 넓고 평평하다. 아래 토골마을 사람들은 이를 '대암'이라고 불렀다. 옻골마을에선 '대암산'이라고 했다. 한자로 대암(臺岩)이라고 쓰고, 대바위(대바구)라고도 불렀다.
대암봉 아래 옻골마을이 있다. 고택과 돌담길이 예쁜 곳이다.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숙박과 전통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단체와 가족, 개인이 예약하면 된다. 다도와 예절 교육, 떡메치기, 한지공예 등을 접할 수 있다. 한복을 입고 정갈한 마음으로 차를 마신다. 더불어 '팔공산 왕건길'을 탐방하는 것도 좋다. 인근에 호연지기길(5㎞)이 있다. 평광 종점에서 매여 종점까지 구간이다. 재바우농원에 최고 수령 홍옥사과나무가 있고, 요령봉(492m)과 어지럼바위 등 볼거리도 적지 않다. 첨백당과 광복소나무, 평광 사과나무길, 병아리 알까기바위 등지도 가볼 만하다.
내달 3일 대암봉과 인근 야경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매일신문은 이날 대구경북민 803명과 함께 8천30m를 걷는 야간산행을 떠난다. 옻골마을에서 출발해 '옻골재~대암봉~대암봉 전망대~대암봉~거북바위'를 거쳐 옻골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팔공산 숨결 속에서 멀리 대구 야경을 감상할 기회다. 더불어 팔공산 야간 산행로 정비와 주요 봉우리 이름 확정 및 비석 건립의 밑거름을 다지는 취지이다.
◆야행의 처음과 끝, 옻골마을
공산야행은 옻골마을(동구 둔산동)에서 시작해 마무리한다. 마을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완만한 경사의 골목을 따라 걷는다. 마을은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오목한 지형으로 포근한 분위기를 지녔다.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 불린다. 옻 '칠'(漆) 자와 시내 '계'(溪) 자가 합쳐져 칠계라고도 한다.
1616년(광해 8년)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 최동집 선생이 처음 들어와 살았다. 이후 경주 최씨 집성촌을 이루게 됐다.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숲이 있다. 마을이 주변보다 높아 금호강이 보이는데, 이 탓에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온다고 보고 숲을 조성한 것이다. 지금도 연못과 느티나무들이 있다. 마을 어귀에 있는 350년이 넘은 거대한 회화나무 두 그루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높이가 10m가 넘는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현재 마을 곳곳에 고택과 옛길, 돌담이 남아 있다. 경주 최씨 종가인 백불(百弗)고택은 마을 가장 안쪽에 있다. 입향조인 최동집의 손자 최경향이 1694년에 지었다. 대구 지역 가옥 중 가장 오래됐다. '백불'은 조선 정조 때 학자인 백불암(百弗庵) 최흥원의 호이다. 고택은 대구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나오고, 사랑채와 안채가 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고택의 오른쪽에 보본당이 있다. 종가 제사를 지내려 1753년 지어진 건물이다. 사당과 재실, 음식을 장만하기 위한 곳으로 이뤄져 있다.
마을은 돌담과 토담으로 정감이 넘친다. 담장은 2006년 등록문화재 제266호로 지정됐다. 담장 길이가 2.5㎞가량 이어져 있다. 담이 지나는 곳에는 나무를 베지 않았다. 나무 아래로 담장 높이를 낮췄다. 골목마다 기와지붕을 이은 돌담이 양옆으로 서 있다. 담의 높이가 집 안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사생활이 지나치게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안과 밖을 이어준다.
◆곳곳이 즐거운 야행길
야행은 옻골마을을 지나서 본격화된다. 작은 계곡 옆길이 완만했다. 자두와 복숭아나무가 풍성하게 열매를 맺었다. 붉은 빛깔이 탐스러웠다. 자두 열매에는 맛있어 보이게 윤기가 흘렀다. 넓은 초지에는 하얀 들국화가 가득했다. 작은 바람에도 꽃이 춤을 추듯 흔들렸다. 한가로운 농촌 길을 걷는 기분을 즐길 수 있었다.
10여 분을 올라가니 자그마한 사방댐이 나왔다. 이를 지나면 평지에 가깝던 길이 점점 가파른 오르막으로 바뀐다. 좁고 호젓한 오솔길로 모습이 달라진다. 군데군데 나무뿌리가 땅 밖으로 나와 천연 계단을 만들었다. 올려다보니 나뭇가지가 무성하게 하늘을 덮었다. 가끔 불어오는 산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험한 구간에는 돌계단이 조성돼 있었다.
출발한 지 30분이 지나 옻골재(315m)에 다다랐다. 동서로 이어진 능선의 처진 지형이었다. 대암봉까지 0.9㎞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북쪽을 보니 평광동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차가 없던 시절 옻골재는 둔산동과 평광동을 이어주던 길목이었다. 용암산과 능천산 사이 능선 가운데 낮은 편이고, 직선거리도 가깝기 때문이다.
옻골재에서 대암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라 평탄했다. 오른쪽에 팔공산 자락이 어스름했고, 왼쪽에 대구 도심 불빛이 보였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다. 10분 정도 걸으니 암석 구간이 나왔다. 대암봉으로 가는 최대 난코스였다. 설치된 줄을 잡고, 크고 넓적한 바위를 올랐다. 암석을 통과하는 데 천천히 가도 5분이면 충분했다. 이후 다시 깊은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대암봉 직전에 한 차례 가파른 오르막이 나왔다. 몸을 앞으로 낮추고 주변 나뭇가지를 지지대로 삼았다. 야행을 시작한 지 1시간 10분(휴식 10분 포함) 만에 대암봉에 도착했다. 바닥에 헬기장 표시가 있었다. 서쪽으로 30여m 더 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넓고 평평한 바위가 펼쳐졌다. 남쪽으로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어서 대구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경부고속도로와 도동분기점, 83타워, 대구스타디움 등 밤을 수놓은 불빛에 홀렸다. 선선한 바람도 땀을 식혀주었다.
하산하는 길은 가벼웠다. 대왕암에서 거북바위 방향으로 내려왔다. 호반의 가파른 암벽 구간을 제외하곤 무난했다. 총총걸음으로 사뿐사뿐 10분을 걸으니 거북바위가 나왔다. 근처에는 평상이 놓여 있었다. 여러 명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길은 점점 더 넓어지면서 완만해졌다. 하산한 지 25분쯤 야외운동기구를 지나쳤다. 20분 더 내려오니 옻골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숲이 나왔다. 야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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