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박근혜 효과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이 국민들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했다. '이게 나라냐'란 한탄과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특히 박 전 대통령에 몰표를 보냈던 대구경북민 상당수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긍정적 효과도 없지는 않은 듯하다. 결과적으로 적폐 청산을 겨냥한 촛불을 하나로 모아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구경북의 정치 풍토와 지역민들의 정치의식 변화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 눈길이 더 쏠린다.

TK에는 사실상 50년 이상 보수 일당만 존재했다. 지역주의 병폐가 고착화된 결과였다. 한쪽 눈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선거에서 유권자의 당연한 선택권을 공천권자에게 갖다 바친 꼴이 됐다. 당선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국회의원은 다시 유권자인 국민을 두려워하기보다 공천권자의 눈치만 살피다 보니 국민은 뒷전이었다. 치열한 노력이나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도 공천만 받으면 쉽사리 당선된 바람에 일꾼의 자질이나 자생력은 허약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지역에서 유력 정치지도자가 배출될 토양은 척박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정당이나 진보정당은 발붙일 수 없었고, 이 계통 정치인의 지역활동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의 독립운동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점점 개혁'진보 정치인들의 씨도 말라갔다.

이런 메마른 땅에 '박근혜 효과'로 씨가 움틀 텃밭이 생겨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해 사면초가에 내몰린 박 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무리수를 감행했다. 정권의 위기를 거대 여당의 바람막이로 모면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친박(친박근혜) 공천을 노골화했다. TK에는 친박 중의 친박 '진박'(진짜 친박근혜)을 내리꽂았다. 결국 일부 친박과 진박이 배지를 거머쥔 대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참패했다. 촛불은 탄핵의 불길을 댕겼고, 박 정권은 불길 속으로 사그라졌다.

한국당은 바른정당이 분화되면서 TK 지역당으로 전락했다. 대선 과정에서 유승민 국회의원의 전국적 조명과 대선 이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부상은 박근혜 정권 몰락의 반대급부이다.

지역을 텃밭으로 여기는 한국당은 친박을 '바퀴벌레'로 치부한 '막말' 홍준표 대표와 친박 간 갈등을 수면 아래에 그대로 둔 채 여전히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홍 대표는 TK 맹주도 노리고 있다지만, 고교 졸업 후 지역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 느닷없이 '대구사람'이라고 한다고 해서 지역의 정치 지도자로 인정받기엔 역부족일 터다.

보수정당에만 맹목적으로 기대왔던 일부 지역민들은 한국당의 와해에 가슴이 아프겠지만,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TK는 시험대에 놓일 것이다.

일당 독점에 목매고 유권자의 권리를 공천권자에 넘겨온 폐쇄성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다양성을 십분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기로에 섰다. 내년 지방선거는 공천권자에게 유린당한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를 찾아올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도 지역 대표정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줄 수 있을까. 배신자 프레임을 걷어내고 대구경북이 큰 그릇으로 바른정당 같은 새로운 보수도 담아낼 수 있을까. 김부겸 장관에게 '호남당' 꼬리표를, 유승민 의원에게 '배신자' 낙인을 벗겨줄 때 비로소 이들이 지역을 넘어 한국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고, TK 정치 토양도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또 '종북 좌파'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의당의 진보성을 수용하면서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는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민주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지역에서 제대로 뿌리내릴 때 역설적으로 한국당이 제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철옹성같이 굳게 닫힌 TK가 아니라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TK를 기대해본다. '박근혜 효과'가 메마른 지역 정치 풍토를 기름지게 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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