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유선이 만난 사람] 우종천 정혜아카데미 이사장

"로봇은 물리·전자·기계 등 융합, 협업 정신 어릴 때부터 배워야"

사진=이무성 객원기자
사진=이무성 객원기자
정혜아카데미 과학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경연에 참가할 자신의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정혜아카데미 과학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경연에 참가할 자신의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부터 사회 각 분야에서는 과학을 주제로 한 담론들이 자주 오가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짧은 시간 동안 인간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부터의 과학은 더 짧은 시간 내에 인간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삶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을 것이 분명하다. 기대도 크지만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다음 세대를 살아가야 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지 막막한 현실이다.

이런 물음을 안고서 정혜아카데미 우종천 이사장을 만났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서 한평생을 살아온 그는 사재를 털어 학생들을 위한 과학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에 대학원장까지 하셨던 분이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아카데미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년퇴임하면 어린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생각했다. 이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학을 손으로 해 볼 수 있는 시설이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즐기면서 학습할 수 있는 기회 제공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시작했다.

-정혜아카데미에서는 로봇과 관련된 활동이 많은 것 같다. 로봇과학이란 물리학을 응용한 것인가. 가장 중점을 두는 교육 목표를 말씀해 달라.

▶과학을 손으로 해야 한다고 앞서 언급했다. 손으로 해서 하나 둘 원리를 익혀 가면 물리와 화학 같은 과목이 그리 어렵지 않다. 비커 등 틀에 박힌 실험기구들을 주고 '해 보라'고 하면 거부반응이 있지만 로봇을 주고 '어떻게든 해 보라'고 요구하면 거부반응이 별로 없다. 로봇을 만들면서 익혀야 할 요소를 통해 분수와 곱셈 등 수학도 익힐 수 있다. 예를 들면 로봇이 움직이는 데 필요한 크기가 다른 기어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을 익힌다. 외우지 않는다. 로봇은 배움의 유용한 수단이다. 요즘 이런 것을 두고 소위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이라고 한다. 혹은 예술(Art)을 넣어서 STEAM 교육이라고도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교과목을 융합해서 가르치자는 운동이 10여 년 전부터 활발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혜아카데미 체험이 실제로 학교 성적을 향상시키거나 입시에 도움이 되는가. 요즘 학부모들은 학업성적과 관련되지 않으면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학부모의 궁극적인 바람은 자녀가 장래에 행복한 삶을 갖게 하는 것이다. 높은 학구열은 좋지만 자녀의 미래를 위하는 방법이 오직 명문대 입학뿐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정혜아카데미에서는 "가르쳐 주지 말고, 하라고 하지도 말고, 하지 말라고 하지도 말아라"는 3금(禁) 교육 지침이 있다. 이는 학업성적이나 대학 입시를 위해서 만든 지침이 아니다. 부모들 중에는 정혜아카데미에 한 번 보냈다가 안 보내는 분도 있지만 아이들이 가겠다고 해서 계속 보내는 분도 상당수다. 아이가 변하는 것을 느껴서 다시 보내는 경우다.

-과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어릴 때 갖는 과학적 호기심이 중요한 건 알지만 현실적으로 학생들은 입시를 염두에 둔 과학 학원에 가는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나올 새로운 지식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흡수하고 소화할 수 있는 기초지식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좋은 대학에 보내느라 애를 쓰면서도 안 가르치는 것이 하나 있다. 실패하게끔 내버려 두지 않고 실패한 것을 회복하도록 하는 방법을 안 가르쳐준다. 실패한 것에 대해 질책만 할 뿐 실패한 것을 기반으로 회복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실패가 없을 수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한 후 회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에서 실험을 하라고 하는 이유는, 실험을 해서 다 잘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복하다 보면 결과가 나온다. 이때 확실한 건, 잘 안된 것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아니까 자기가 전환해서 고친다. 그것이 바로 성공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훈련이 된다. 즉, 10년, 20년 후를 보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때 뭐가 나올지 어떻게 아나. 그렇지만, 새것이 나왔을 때 실패했다가 회복한 경험이 있으면 도전하고 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초중고의 과학교육을 어떻게 보는가.

▶초중고 교육의 중심은 교과서인데 이 교과서는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70년 전과 내용도 체제도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과학기술은 천지개벽했고 학생들은 각종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을 통해 유입되는 단편적 지식의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가 이를 소화하거나 여과할 능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또 초등학교 과학교과서를 보면, 그 내용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균등하게 4등분되어 있다. 과연 그 연령의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최선인지, 필요한 내용은 다 포함했고, 불필요한 내용은 개정하며 여과했는지 의문이다. 중고등학교도 비슷하다.

캘리포니아 과학고등학교 사례를 들어보겠다. 물론 거기서도 과학과 수학을 가르친다. 1학년 때는 수학, 2학년 때는 과학, 3학년 때는 기술을 가르친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과학, 수학,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학기 시작 전에 함께 회의를 하고 주간 단위로 교육 내용을 상의한다. 예를 들어, 공학에서 톱니를 가르친다면 수학에서는 분수를 가르치는데 그러면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 두 개가 맞물려 돌아가는 이치를 분수를 통해서도 깨우친다. 역으로, 분수를 통해서 서로 다른 크기의 톱니바퀴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융합이 된다. 하지만 우리 교과서를 보면 그렇게 할 수 없다. 과학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가르치는 수학은 정작 수학 교과서 5학년 때 나온다. 또, 미적분이 있어야 물리를 가르치는데 미적분이 나오는 물리학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가르치며 수학에서 미적분을 2학년 때 가르치면 제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과학은 융합이라는 의견인가. 앞으로 과학교육은 그렇게 가야 하는가.

▶과학에 국한된 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이란 결국 융합산업이다. 로봇 역시 융합기술이다. 로봇은 물리, 전자, 기계, 프로그램 등이 합쳐진 것인데, 만들 때 혼자 할 수가 없다. 당연히 물리, 전자, 기계, 프로그램, 전기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랄 때부터 그런 협업의 중요성을 배워야 한다. '내가 남들보다 잘해서 1등 해야지' 이런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교육철학이 바뀌어야 하며 학부모와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아의식을 좀 다른 쪽으로 끌어가야 한다. 지금 상태로 가면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제아무리 해 봐야 결과적으로 허상일 수 있다.

-그런 흐름을 보면 앞으로는 융합된 학문이 더 대두될 것 같다.

▶로봇이라고 하면 요즘은 자동차 공장에서 사람의 일을 대체하거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로봇을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에는 다리를 주물러주는 예쁜 로봇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예쁘게 만드는 디자이너도 필요하다. 산업 자체가 융합이고 인재도 융합이 기본이다. 결국 과학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기술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과학기술이다. 과학에는 철학적인 면이 있어서 우주와 인간의 기원도 따지지만 기술과 공학은 사람들의 수요가 없으면 소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간 중심이다.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한때는 장래 희망이 과학자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과학자'인 이사장님께서 보기에 우리나라 과학의 위상은 지금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최근 50년간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은 세계가 다 놀라고 부러워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박사는 외국에서' '첨단은 외국에서' 하는 식의 해외 의존이 상습화되어 있는 듯하다. 가끔 '외국에서는'이라고 예를 드는 경우가 있다. 그 예를 든 것이 실제 외국에 나가 보면 다 맞느냐고 묻고 싶다. '외국에서는'이라고 예를 드는 대부분은 미국 상황이고 그중에서도 LA, 뉴욕 등의 큰 도시인데, 그곳에서 보고 온 것이 '미국에서는'과 '세계에서는'으로 시작하는 주장에 등장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외국 것을 이식해 놓은 것에 불과한 사상누각(砂上樓閣'모래위의 집)이라고 혹평하시는 분들도 있다. 우리 밭에다 씨를 뿌리고 뿌리가 단단한 나무를 키워야 가지도 무성해지면서 주위에 다른 나무와 풀도 자라 숲을 이루게 된다. 국내에서 과학기술의 숲이 온전히 우리나라의 것으로 자리 잡고 그러한 양상으로 발전하면 과학기술을 하려는 어린이들도 다시 많아질 것이다.

-자연과학, 이공계 두뇌의 이탈을 염려하는 소리가 작지 않다. 하지만 정부의 과학 육성 정책은 늘 관심에서 비껴 있는 느낌이다. 추구해야 할 정책 지향점이 무엇일까.

▶지금까지, 몇 개의 연구소나 몇 개의 우수 집단 육성이 외형만 화려한 뿌리 없는 시범사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과학교육이라는 기초 단계에서부터 연구 개발에까지 이르는 과학기술 전체가 이 땅에 건실히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육성된 우리의 과학기술이 자체적으로 또 다른 가능성과 기회를 반복해서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장래성 있는 우수 인재를 잘 선택해야 하는 것도 또 다른 중요 과제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IT 강국으로 자리 잡은 것을 보더라도 우리 국민의 '과학두뇌'는 우월하다. 학생들도 각종 세계 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

▶4차 산업혁명 같은 융합기술 분야, 지식정보의 공유가 보편화된 시대에는 다양한 지식과 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협동해야 하는, 음악에 비유하면 오케스트라 같은 집단의 조화된 노력이 필수다. 탁월한 개인의 존재도 중요하지만, 이는 여러 사람의 두뇌를 합친 것을 당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질적인 구성을 포용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니 인재양성, 과학교육에서 가장 먼저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협동'과 '팀플레이'다. 우리나라 입시, 학교 모두 개인을 한 줄로 세우는 경쟁이다. 이런 교육 방법은 개인이 각종 대회에서 우수성을 나타낼 수 있게 할지는 모르지만, 상호보완적 협동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다.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한 때이다.

-과학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과학은 인간의 실체에서부터 우주의 진실까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질병, 예방, 통신 발달 등을 보면 과거보다 인간의 생활을 편하고 풍요롭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반면 원자탄, 미사일 같은 공포를 동반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것이니까 간단한 답은 없겠지만, 과학의 발달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에 다양하고 긍정적인 요소가 생겨난 것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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