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형문화재, 10만 시간의 지혜] <13> 청도 삼베짜기 장무주 할머니

외로움·시름 덜어준 '77년 베틀 외길인생'

장무주 할머니의 1945년식 베틀은 아직도 쌩쌩하다. 할머니를 높여준 베틀이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장무주 할머니의 1945년식 베틀은 아직도 쌩쌩하다. 할머니를 높여준 베틀이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14살 때 시작, 다들 구경하러 와

전승지원금 분배 갈등 있었지만

의지 갖고 기능보유자 명예 찾아

"집중해서 삼베 짜면 성취감 최고"

"시집 오기 전부터 짰어요. 14살 때부터일 거라요. '14살이 무슨 베를 짜노'하며 구경하러 왔을 정도였어요."

경북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삼베 짜기 기능 보유자 장무주(89) 할머니의 방은 베틀이 주인인지, 할머니가 주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방의 절반을 베틀이 차지해 똬리를 틀고 있고, 나머지 반을 겨우 할머니의 누울 자리와 화장대가 베틀을 시중들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베 짜기는 할머니의 생활이었다. 속도는 더뎌 한창때의 길이만큼 짜내지 못하지만 삼베를 짜낸 성취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내가 이 큰 베틀을 조절한다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잘 짜면 칭찬까지 받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요."

베틀은 평생 할머니를 높여주고 인정해 준 은인 같은 존재였다. 모 정치인의 말마따나 '휴지통에 있는 나를 탈탈 털어서 다시 쓰일 수 있게 해준 분'이나 한가지였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이면에는 서글픈 사연이 있었다. 할머니가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가 된 건 1995년 6월이었다. 그러나 전승지원금 분배를 두고 마을에서 다툼이 일었고 이를 빌미로 관계기관은 할머니의 기능 보유 인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베 짜기 기술을 인정해줄 때는 언제고, 마을에서 분란이 일었다고 취소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일련의 절차가 기가 막혔던 할머니는 행정소송을 통해 이듬해 기능 보유자의 명예를 되찾았다. 그러나 마을에서 외톨이가 돼야 했다. 전승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청도군청은 공식적인 이유로 할머니가 전승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금을 주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거대 행정집단인 관공서에 대항하기란 힘에 부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더욱 베틀에 의지했다. 외로움에 따른 시름은 베틀에 앉아 풀어냈다. 베틀은 지난 20년간 정신적으로 힘겨워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기능 보유를 인정하고 무슨 증(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증서를 뜻함)을 주는 건 관공서가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내가 갖고 있는 기술까지 그렇게 없앨 수 있나요."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할머니에게 삼베 짜기는 훈장이고 흔적이었다. 우리 나이로 90세. 14세 때부터 했으니 76년째 이어지는 삼베 짜기 외길인생인 셈이다. 할머니가 전한 '10만 시간의 지혜'도 '의지'에 방점이 찍혔다.

"집중해서 뭔가를 하면 기분이 좋아요. 사람이 의지를 갖고 있으면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요. 누가 막아도 계속 하는 것처럼. 우짜든지 보고 다 따라 하는 거지요."

무형문화재 전수관 하나 없는 마을에서 "요즘도 하루에 2자(1자=50㎝ 남짓) 넘게 짠다"며 베 짜기를 생활로 삼는 할머니의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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