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 100주년 기념사업이 필요한가?'

경상북도가 지난해 8월 경북 도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질문이다. 응답자들은 7.1점(10점 만점)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기념사업에 대한 기대효과'에는 '박 전 대통령 재조명'과 '도민 자긍심 증대'가 각각 7.0점과 6.6점으로 나타났다. 경북도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 100주년 기념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경북 도민들이 기념사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11월 14일은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예년에는 탄생일을 전후해 추모하는 행사가 많았지만 올해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이 격화된 탓이다.

박 전 대통령 기념우표도 끝내 무산되는 형국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선보일 예정이던 우표 발행 계획이 막판에 취소됐다. 구미시는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결정이 번복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기념우표뿐만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취지의 다른 사업들도 난관에 부닥쳤다.

경북도도 1년 만에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기념사업을 줄줄이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재조명 다큐멘터리 제작과 전기(傳記) 신문 연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구미시와 함께 준비한 사업 가운데 기념음악회도 취소했으며, 탄신제는 개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구미시는 자체 계획한 기념사진 전시회와 기념 동산 조성, 도록 제작'발간 등 8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시민단체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 전 대통령의 상황이 지금처럼 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대구경북(TK)에서 박 전 대통령은 '보릿고개'를 극복한 위대한 근대화의 지도자 이미지가 강하다.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성대한 기념식이 예상됐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이러한 지경에 처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탓이다. 그가 비운의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에 새긴 그의 흔적은 깊고도 뚜렷하다. 물론 공과는 분명 존재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를 일으킨 공적이 뚜렷하지만, 장기 집권을 위한 독재정치로 인권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당한 당사자와 가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한국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주인공이면서도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새 정부가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의 국정 철학을 계승하는 반면 다른 정권들과는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평가에 대해 인색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 사업들이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새 정부의 영향력 행사에서 비롯됐다는 반발도 나온다.

찬반 논란이 격화되는 요즘이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경북도지사를 노리는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 전 대통령을 '반인반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격화 논란은 되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막고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권좌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신해철의 노래인 '70년대에 바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는 정부 관리의 멘트로 시작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보 수락 연설로 끝난다. 신해철은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라고 노래한다.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경북도와 구미시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무엇이 옳았었고 틀렸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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