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레밍은 억울하다

동물들은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인데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해안가로 떼 지어 올라와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죽음을 맞는 고래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군의 음파탐지기가 원인이라는 설 등이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중 하나다.

나그네쥐라고 불리는 레밍도 자살하는 동물로 한때 오인된 적이 있다. 북유럽 등 고위도 지방에 서식하는 레밍은 개체 수가 늘어나면 집단 이동을 시작하고 절벽에 이르러서는 떼 지어 바다로 몸을 던지는 습성을 보인다. 혹자는 개체 수 조절을 위한 희생적 행동, 즉 이타적 자살로 해석했지만 근자의 생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이는 '사고사'에 가깝다. 레밍은 우두머리를 쫓는 습성을 지녔는데 집단 이동 중의 앞 무리가 방향을 잘못 잡아 벼랑으로 이끌 때 벌어지는 참사라는 학설이다.

레밍의 나쁜 시력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독한 근시인 레밍이 바다를 작은 강이나 개천으로 착각한 나머지 헤엄쳐 건너려다 탈진해 죽는다는 것이다. 레밍이 먹는 사초 속(屬) 식물이 원인이라는 이론도 있다. 소화액을 많이 분비시키는 이 풀은 섭취할수록 허기가 지고 소화기에 고통을 준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레밍 무리가 이동하면서 풀을 다 뜯으면 호숫가나 바닷가에 다다르게 되고, 혹시나 건너편에 먹이가 있을까 싶어서 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죽을 줄도 모르고 물로 뛰어드는 레밍의 행태는 군중심리에 빠진 인간을 비유할 때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자기감정조차 추스르지 못 하는 일부 위정자들이 대중에 대한 억하심정을 표출할 때에도 레밍은 거론된다. 물난리 속 외유성 유럽 연수로 질타를 받은 김학철 충북도의원이 방송 인터뷰에서 국민을 레밍에 비유했다. 말실수라고 했지만 평소 국민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어서 국민 분노가 더 크다. 주권자인 국민을 설치류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가당찮은가.

정치인이 제 이미지가 회복 불능 상황으로 추락할 줄도 모른 채 레밍 막말을 한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하다. 정치인 같은 공인(公人)이 절대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풍자, 비난, 그리고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이 정도 분별력이 없다면 애시당초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함량 미달 인사들이 너도나도 정치 무대에 등장해 온갖 막말을 해대니 국민들은 허파가 뒤집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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