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시작한 청춘이 왜 사람들은 비굴하고 용감하지 못한지를 물었다.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단다. 너도 곧 적응하게 될 거야"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다. 그 말에 청춘은 소리 내어 울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면 그게 더 슬픈 일이라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에 힘주어 대답한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옳지 않음을 보고도 눈감아주고, 내 일이 아니면 방관하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어느 날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찾아왔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만년에도 손수 집안일을 하고, 어린이 독서클럽을 돌보며 동화까지 썼다. 아흔다섯 살로 지구별을 떠날 때까지 삐삐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긴박한 스토리와 악에 대결하는 사자왕 요나탄과 스코르판 형제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다.
기사의 농장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내가 다그쳤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78P)
그렇다.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진실한 말, 사람답게 사는 것. 지도자답게, 국민답게, 어른답게, 젊은이답게, 선생답게, 학생답게, 부모답게, 자식답게…. 답게 사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참된 내일을 열어준다는 것을 어린 요나탄은 익히 알았다.
형 요나탄이 죽음을 통과하여 낭기열라로 간 뒤 병약했던 동생 스코르판도 형을 뒤따라가 눈물의 해후를 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낭기열라에서 형제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독재자 텡일의 등장으로 낭기열라는 억압과 약탈로 피폐해지고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텡일에 맞서 저항하지만 무시무시한 악마 '카틀라'를 등에 업은 텡일의 폭력을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사자왕 형제는 소피아, 마티아스 할아버지, 오르바르 등과 함께 용감하게 텡일 일당을 쓰러뜨린다.
나는 정말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해내지 못한다면 나는 하잘 것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굳세고 언제나 착한 일만 해 온 형과 함께라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았습니다.(319P)
스코르판은 약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텡일에 맞서는 형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 좌절한다.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우리 자신을 마주한 듯 안타깝다. 불의를 거부하고 사람다움을 지킴으로써 마침내 낭기열라를 평화의 안식처로 만들었던 사자왕 요나탄, 그를 바라보며 스코르판은 매 순간 자신을 채찍질한다. 마침내 스코르판도 사자왕 칼로 거듭나며 형 요나탄과 함께 낭길리마의 햇살을 맞이한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바꿀 힘도 없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스코르판에 머물러 있다. 이제 용감한 사자왕 칼을 꿈꾼다. 우리 사는 이곳에 낭기열라의 빛이 가득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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