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채 탕감

인류 역사에서 부채 탕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2천4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한 왕이 자기 왕국 내의 모든 부채를 탕감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왕은 '나는 자유를 퍼뜨렸다. 자식을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어머니를 자식에게 돌려줬다. 모든 이자를 폐지했다'고 자랑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부채 탕감이다.('부채, 그 첫 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이런 전통은 고대 유대사회로 전승됐다. '바빌론의 유수(幽囚)'. 이전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된 다음 해를 희년(禧年)으로 정해 모든 부채를 탕감하고 담보로 잡힌 토지를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며,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을 자유인으로 되돌렸다.

그뿐만 아니라 가축과 땅에도 휴식의 시간을 줬다. 구약 성서 레위기에는 '희년 계산법' '노예해방'은 물론 '휴경'(休耕)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희년이 돌아오면 나선형의 숫양 뿔로 만든 나팔을 불어 희년의 시작을 알렸는데 히브리어로 숫양의 뿔을 '요벨'(yobel)이라 한다. 기념일(특히 25주년이나 50주년)을 뜻하는 영어 단어 '주빌리'(jubilee)가 여기서 비롯됐다.

희년의 목적은 유대인들의 이상이었던 평등공동체의 회복이었다. 즉 희년을 통해 평등한 하느님 나라의 재림(再臨)을 희망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유대사회에서 빈부 격차와 부채의 고통이 심했다는 얘기도 된다. 이를 방치하면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희년은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한 50년 주기의 사회안전망이었던 셈이다.

이런 방식의 부채 문제 해결이 현대사회에서도 가능할까? 좌와 우를 막론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하지만 부채 탕감을 노리고 일부러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도덕적 해이'를 양산하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온다. 도덕적 해이가 확산하면 부채 탕감은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악순환을 낳는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만 바보로 만드는 것도 큰 문제다. 장기 소액 연체자의 빚을 정부 예산으로 사들여 100% 소각하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부채 탕감 정책은 바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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