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연수(硏修)

얼마 전 자신들의 지역구에 큰 수해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외국으로 나갔던 네 명의 지방의원들이 엄청난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 그중 국민들을 설치류에 비유해서 분노를 샀던 한 의원은 SNS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자신의 개인사부터 시작해서 관광산업을 자기 지역의 새로운 먹거리로 만들겠다는 충정, 그리고 사태가 터지고 난 뒤부터 겪었던 괴로움들을 구구절절이 이야기했다. 가난했다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내세울 것이 못 된다. 그런데 가난했던 과거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 힘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독선적인 성향과 피해 의식이 단단해진 경우가 많다. 그 의원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은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끼리 가질 수 있는 유대감이나 인간미는 보이지 않고 독선과 피해 의식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또 그 의원은 자신이 외국으로 나간 목적이 '관광'(觀光)이 아니라 관광산업 선진국에 '연수'(硏修)를 받으러 간 것이라고 강변했다. 예전에 여행과 관광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관광'은 원래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선진 문물을 둘러보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연수'는 학문, 기술, 인성 등을 갈고닦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 비난을 받은 충북도의회 의원들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 의회들의 해외 연수 실태를 보면 해외에 가서 배우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관광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는 수준의 배움을 얻어오라고 혈세를 들여서 보낸 것은 아니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지방의원들이 가는 것은 '연수'가 아니다. 해외로 나간 명분을 그대로 믿어주면 '관광'의 원래 의미와 부합하고, 실제 일정이나 형태를 보면 '휴양'이나 '여행'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

관광산업 개발을 위한 것이라면 계획을 담당할 공무원들을 외국 지자체에 파견해서 배우게 하는 것이 진짜 연수이지, 임기도 얼마 안 남은 지방의원들이 외국에 며칠 나가는 것을 연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진짜 관광산업을 위한 것이라면 국내 여행 실태를 분석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가진 다른 지역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로마처럼 원래부터 유적지가 많은 곳에 가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올 수 있을까?

'연수'는 배움을 통해 인간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교육'이라는 말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자신이 항상 옳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연수가 필요 없는 사람이다. '외유성 연수'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지만 배우고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거나 배울 준비가 없는 사람이 갈 경우 그냥 '외유'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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