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世風] 홍익(弘益) 조세

세금 이야기가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다. 이는 앞으로 5년 동안 추진할 국정의 밑그림인 셈이다. 재원을 두고 세금 문제는 자연스럽다.

100대 과제가 잘 이뤄지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정부에 따르면 178조원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의 하나가 5억원 이상 높은 소득을 올리는 고소득자 4만 명과 과세표준 2천억원 이상 대기업 116개 사를 대상으로 한 세금 거두기이다.

문제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에게 세금을 거두더라도 연간 3조7천800억원, 5년간 18조9천억원에 그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세금 거두기와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한 방법을 두고 여야의 입장이 엇갈린다. 우선 이름 붙이기부터 그렇다. 여당은 '명예 과세'존경 과세'사랑 과세'라고 표현했다. 야당은 '세금폭탄'이라고 일축했다. 또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여당은 이런 세금과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 감축 등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결국에는 전반적인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여야의 세금 논쟁은 조선 세종 시절의 세금 논쟁과 닮은꼴이다. 1418년 8월, 임금이 된 세종은 즉위 때부터 새로운 세금 제도 마련에 매달렸다. '백성을 위한 공평 과세'를 위해서였다. 당시 조세는 논밭에 쌀과 콩으로 수입의 10분의 1을 거두었다. 고려 때 물려받은 제도다. 그런데 힘과 권력을 가진 관리 등은 농간을 부렸고 논밭을 숨기거나 줄이고 빠뜨렸다. 조사관에게 뇌물을 주거나 짜고 세금을 내지 않거나 줄였다.

애꿎은 백성들만 고스란히 부담을 안았다. 소수의 가진 자와 힘 있는 관리, 중간 조사자의 농간을 없애고 토지의 좋고 나쁨과 한 해 농사의 풍작과 흉작 여부를 따져 매겨진 토지의 등급에 정해진 일정량의 세금을 내는 공법(貢法)이란 조세법 마련을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 배경이다. 1418년 공법에 뜻을 품은 뒤 1427년 과거시험 출제, 1428년 조정의 공식 논의로 이어졌다. 예상대로 관리 등은 벌떼로 반대했다.

왕과 반대하는 신하들 간의 수없는 '밀당'이 반복됐다. 1440년 3월 공법 도입을 두고 당시 69만2천477명의 백성 가운데 17만2천806명을 대상으로 5개월간 찬반 여론조사도 이뤄졌다. 결과는 찬성 9만8천657명, 반대 7만4천149명이었으나 공법 도입은 불발됐고 1444년 11월 마침내 도입이 결정됐다. 뜻을 세운 지 26년, 임금 재직 32년 가운데 26년을 보냈다. 결과는 탈루 방지와 공평 과세, 고른 과세로 재정이 넉넉해졌고 세율도 20분의 1로 절반이 됐다. 마침내 1460년 세조 때 경국대전에 실렸고 조선 패망 때까지 이어졌다.

이런 세종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여당에서 추진하는 고소득 과세는 많은 국민이 환영하고 있다. 굳이 찬성이 85%라는 여론조사(추미애 민주당 대표 발언)를 앞세우지 않아도 그렇다. 이는 고소득에 걸맞은 공평 과세에 대한 국민적 바람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빈부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를 부채질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과세 정책의 허점으로 빚어진 결과이다.

지금 여야가 할 일은 한가롭게 이름을 둘러싼 따지기가 아니다. 정치 주도권을 위한 정략적인 정쟁을 할 때도 아니다. 공평 과세를 통한 과세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 마련에 고민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이는 널리 국민을 이롭게 하는, 말하자면 '홍익(弘益) 조세'를 위해서라도 그렇다.

아울러 여당에서도 세금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만도 아닌 듯하다. 시간을 갖고 국민적 합의라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현재와 같은 4당 체제하에서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원전정책을 비롯한 여러 정책들이 벌써부터 국민 갈등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비록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인 높은 지지는 이어지고 있지만. 야당을 끌어들이는 설득 작업이 더욱 필요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홍익 조세를 위해서라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