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소설 '민족의 죄인'은 반민특위 활동이 한창이던 1948년에 친일 행적이 있었던 작가가 자신의 행적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처럼 쓴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이 친일 행각에 대한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혹평을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민족의 죄인'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의 양심이 있고, 진짜 민족의 죄인들은 반성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꽤 솔직하고 용기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실제 작가 채만식인 주인공 '나'는 일제강점기 때 '나'를 따르던 문학청년들이 사상 문제로 붙잡혀 가면서 아무 죄도 없이 일본 형사에게 구타를 당하고, 구치소에 수감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러다 조선문인협회에서 보낸 황국위문대 활동을 하러 오라는 엽서를 통해 수감 생활을 빠져나오게 된다. 구치소를 나온 '나'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위해 물산을 독려하는 강연을 하러 다닌다. 수감 생활이 싫어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강연을 하고 다니는, 수렁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시골로 들어가 살기로 결심을 한다. 시골로 들어간 것은 자신에게 죄를 강요하는 일제로부터의 도피였을 뿐, '나'는 이미 지은 죄가 사라질 수 없다고 느낀다. '나'는 자신의 죄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많은 수효의 영리한 사람들이 저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일본 사람을 따랐다. 역시 적지 아니한 수효의 사람이 핍박을 받을 용기가 없어 일본 사람에게 복종하였다. 복종이 싫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달리어 민족해방의 투쟁을 하였다. 더 용맹한 사람들은 외국으로 망명도 않고 지하로 숨어다니면서 꾸준히 투쟁을 하였다.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었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두 번째 부류는 친일파로 분류되고, 세 번째, 네 번째는 독립운동가로 분류된다. 소설에서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나'와 친구 '김'은 친일 행위가 집안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무겁게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정작 청산이 되었어야 할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두 번째 부류와 같은 상황이었다며 변명하거나, 과(過)도 있지만 공(功)도 있다면서 은근슬쩍 이념 대결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게 먹혀들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후손들은 공에 초점을 맞추어 미화하려고까지 한다. 광복 70년이 넘어도 아직 논쟁 중인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채만식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여린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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