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자유한국당이 살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말 대단한 분이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분이야."

젊은이들에게 자칫 돌 맞을 말을 내뱉다니 제 정신인가 하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얼핏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분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보 측이나 친문(친문재인) 인사에게서 들은 얘기라고 하면 놀랍지 않은가.

이분들이 생각하는 박 전 대통령의 '공적 아닌 공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제1당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을 끌고 '정치적 무덤'에 함께 들어가 버렸다. 둘째, 보수를 자임하거나 내세우기가 부끄러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당연히 진보 쪽만 힘쓰는 세상이 됐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측근을 만들지 않는 한 아무리 실수하고 잘못해도, 박 전 대통령 자신만큼 잘못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분들의 얘기로는 보수 세력을 그렇게 공격하고 두들겨도 효과가 없더니만, 박 전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보수 세력을 완벽하고도 확실하게 몰락시켰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진정으로 정치를 발전시키고 전진시킨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배배 꼬인 역설적인 표현이기에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틀리거나 잘못된 이야기는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보수 쪽에서는 '우리를 망쳤다'며 욕을 먹고, 진보 쪽에서는 '우리를 살렸다'며 칭송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본인이 그렇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버렸으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박 전 대통령은 서서히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겠지만, 남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보수 세력은 어떻게 생존할지 걱정스럽다. 한국당은 탄핵 정국 때 소멸될 듯하더니만,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힘겹게 살아남았다. 수도권과 다른 지역에서는 '폭망'(폭삭 망함) 상태로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꼴이지만, 그래도 대구경북에서는 가장 큰 정치 세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 줄 서는 인사들이 많은 걸 보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기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당이 요즘 대구경북에서 이런저런 이벤트나 행사를 자주 벌인다. 전국 최초니 처음이니 하면서 대구를 한껏 치켜세우고 대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어쩐지 어색하다. 홍준표 대표의 취향이라고 하나, 한국당이 다른 지역에 가 봤자 외면받을 것이 분명한데, 대구경북에서는 그런대로 행세할 수 있으니 그럭저럭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솔직히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고, 불쾌하고 찜찜한 마음이 앞선다. 한국당이 자신을 확 바꾸고 고치고 난 다음에 지역민에게 다가서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다. 당명만 달리한 채 예전 그대로의 모습과 자세로 지역민을 대하는 것은 지역민의 순수성을 이용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이 무엇을 하든 간에 지역민이 계속 지지해 줄 것으로 믿는 것은 엄청난 오해다. 전국적으로 외면받는 정치 세력을 대구경북만 여전히 보듬어 줄 것으로 착각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지역민은 더는 선량한 '천사'나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한국당이 뼈를 깎는 각오로 전면적인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경북의 지지도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한국당은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인데도 태만하고 나태하기 이를 데 없다. 개혁의 시금석인 박 전 대통령 제명 건을 처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얼마 전 혁신위원회가 내년 지방선거에 상향식 공천을 하지 않고 '전략 공천' '낙하산 공천'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홍준표 대표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말과 같으니 도대체 '혁신'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것 같다.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말은 한국당과 거리가 먼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은 조만간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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