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에 오픈한 파리의 루이뷔통재단 미술관은 건설 단계부터 프랑스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명품그룹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대중과 널리 소통하고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에게 담론과 숙고, 상상력의 플랫폼을 제공할 특별한 미술관 설립을 위해 건축가 프랑크 게리를 찾았다. 이 미술관은 게리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뛰어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건축물은 유리와 날렵한 메탈라인으로 구축된 덕분에 날아갈 듯 가벼워 보인다. 건물 전면에서 계단을 따라 콸콸 흘러내리는 폭포는 유리 범선의 항해를 재촉하는 듯하다. 폭포 하단부에 도열 된 울라프 엘리아슨의 거울기둥에서 반사되는 빛들은 건축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곳에선 지금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다룬 전시가 열리고 있다. 남아공화국의 인종격리정책(apartheid)을 고발하는 윌리엄 캔트리치, 폐기물을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지역 간 분쟁 또는 현대판 식민지를 재고하게 하는 로뮤알드 하주메를 포함한 아프리카 전역의 여러 작가들이 이 전시에 초대되었다.
파리 시내에서 한적한 공간을 즐기며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를 보고 싶으면 붉은 집이란 뜻의 (2000년 개관)를 추천한다. 미술애호가인 안트완 드 갈베르는 영리보다는 미술교육과 공공성에 중점을 두고 출판사와 서점도 같은 건물에서 운영하고 있다. '풀 수 없는'이란 타이틀의 전시에서는 중세 기독교 의식이나 아프리카 토착신앙 의식과 관련된 물건, 패티쉬들과 여러 현대 작가의 작품들을 교묘하게 뒤얽히게 해 미술에서 마술적인 힘의 원천을 더듬고 있다.
작년 10월, 파리 18구 벼룩시장 근방에 도심 속 농원을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공간 가 오픈했다. 폐쇄된 철길을 따라 커뮤니티 텃밭이 조성되어 있고 꿀벌과 닭도 키운다. 구(舊)역사에는 유기농 채소와 과일로 만든 주스와 음식을 파는 카페테리아, 낡은 물품들을 수리할 수 있는 공구들이 구비된 공방이 있다. 모든 것을 재활용한다는 신념 아래 식당에서 남은 음식들을 퇴비나 닭 모이로, 설거지물을 텃밭이나 화장실에서 재사용한다.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재순환(recycle)됨으로써 지구 환경보호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의 미술을 다루는 뒤셀도르프 K21(2002년 개관) 미술관에서는 관객들의 특별한 신체'공간 체험을 유도하는 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건물 꼭대기의 25m 높이 유리돔 아래 쳐진 철제 그물망(2천500㎡) 위로 커다란 PVC 투명볼들이 놓인 공간에서 관객들은 무중력 상태에서의 신체 움직임을 체험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토마스 사라세노는 이번 전시를 위해 3년에 걸쳐 나사 우주항공연구원, 건축가와 협업하여 우주 궤도 실험을 준비했다. 현재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도 그의 란 전시가 진행 중이다.
2000년 개관 이후 단숨에 전 세계 최대 방문객 수를 기록한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4년간의 확장공사를 마치고 작년 6월에 뉴 테이트모던으로 거듭났다. 공사 기간에도 원래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계속되었다.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리뉴얼한 바 있는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와 드 뫼룅은 원래 건물인 '볼리어 하우스'에 자연스레 연결되는 10층 높이 '스위치 하우스'를 세워 새로운 파노라마 뷰를 선사했다. 이곳의 명소인 터바인홀 좌우에 증축된 두 건물은 실내육교로 연결돼 있다. 두 건물 중 콘크리트의 거친 멋을 그대로 살린 건물 'The Tanks'는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영화, 사운드아트를 위한 공간이다. 개관 때부터 소장작품들로 꾸민 상설전시장들에서는 연대기순 설치방식을 배제하고 독특한 테마들에 맞춰 작품들을 선정하고 공간을 연출했다. 이번엔 테마들과 설치방식이 더욱 대담해져서 꼬박 이틀을 둘러봐야 했다. 입장료를 내는 특별전 중에서는 1950년대 인종차별(segregation)에 저항했던 미국 흑인작가들로 구성된 전시가 인상 깊었다. "더 국제적인, 더 다양하고 더 흥분되는 현대미술의 역사를 써나간다"는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의 말처럼,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진화를 멈추지 않는 21세기 미술관의 전형이 되었다.
런던 켄싱턴 공원 중심에 위치한 서펀타인 갤러리에선 개리슨 페리의 위트와 블랙유머가 번득이는, 제목마저도 도발적인 전시 가 열렸다. 정원에는 2000년부터 매년 여름, 세계적인 건축가 한 명을 선정해 새로운 파빌리온을 세우는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올해 선정된 프란시스 페레는 최초의 아프리카 건축가로 고향인 부르기나 파소의 거대한 나무에서 착안해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목조건축을 선보였다.
작년 10월에 개관한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는 예술과 삶의 근원적인 욕망과 불안을 일말의 주저함 없이 표출하는 데미언 허스트의 왕국이라 하겠다. 큰 미술관에 버금가는 규모의 공간에서 3천 점이 넘는 자신의 컬렉션 전시를 비롯해 여러 작가의 개인전이 기획되고 있다. 그의 유명한 약장 시리즈를 그대로 옮긴 레스토랑과 작품을 모티브로 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아트숍까지 포함된 이곳은 런던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서울에는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메세나 사업의 일환으로 기업미술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화'예술의 도시를 표방하는 대구에서도 긍정적인 기업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미술관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기업의 경영과는 별도로 독립적'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재단은 성공적인 미술관으로 발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또한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체계적'통시적으로 진행되는 작품 컬렉션이야말로 선진 미술관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이는 기업미술관뿐만 아니라 국공립미술관에서도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미술시장의 상업 지상주위와 무관하게 글로벌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는 실험실의 기능을 유지하고, 대중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도록 쉼 없이 진화하는 미술관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의 지원이 더욱 활성화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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