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처음 서울에 갔을 때, 대구에 없는 게 참 많았습니다. 대구에서야 기껏 서점에 가거나 영화관에 가거나 레코드 가게에 가는 게 전부였는데, 서울에는 돈만 내면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았습니다. 그때는 돈 주고 살 수 있는 게 많으면 그게 발전이고 좋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서울은 발전된 곳, 대구는 발전이 더딘 곳, 그리고 대구 밖은 발전해야 할 곳, 고등학생의 눈에 우리나라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러다 다른 나라 수도에 살게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더블린,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등. 우리보다 소득과 물가가 다 높은 나라였지만, 제 생활이 구차하지는 않았습니다. 박봉이라도 충분히 즐기고 누릴 것이 많았습니다. 깨끗한 물과 공기와 햇볕과 바람, 푸른 공원과 수백 년 넘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소담스레 쌓이는 눈이 있었고, 맑은 비가 내렸습니다. 밤거리를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여우를 맞닥뜨렸던 런던의 경험은 신선했지요. 인구 800만의 대도시 한가운데서 야생동물이라니요. 차 옆을 지나는 노루를 물끄러미 구경하던 추억도 생각납니다.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자연 덕에 휴일을 보내기도 좋았습니다. 먹고 남은 빵 껍데기 몇 개 들고 집 옆 공원에 가서 백조 밥으로 나눠주고 잔디밭에서 음악 들으면서 책 읽고 오면 그걸로 충분히 휴식이 되었습니다. 주일 저녁 미사를 드리고 나서 성당 문을 닫고 템스 강변을 산책하다가 리치먼드에서 홀로 생맥주 한잔 마시고 오는 길엔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달랑 3천원이면 맥주도 한잔하고 호젓한 강변 경치도 구경하고 아름다운 저택 구경도 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대구도 돈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늘었습니다. 그에 정비례해서 돈 없어도 즐길 수 있던 것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맑은 바람과 물은 마음먹고 돈을 들여서 차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꽃과 나무와 열매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이 아니라 돈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만 존재합니다. 어릴 적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앞산은 그 앞을 떡하니 가로막은 고층 아파트 때문에 오직 그 비싼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통유리창을 장식하는 벽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말 돈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넘쳐나는 곳입니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 되어 갑니다. 맑은 물을 마시고 싶으면 정수기나 생수를 사야 하고 맑은 빗방울이나 푸른 숲을 보고 싶으면 차를 타고 나가거나 입장료를 내어야 합니다. 거리를 걷다가 다리를 쉬고 싶으면 비싼 커피 가게에 가야 합니다. 단출하게 먹을거리 싸서 가던 어릴 적 야영의 기억은 이제 옛말입니다. 돈으로 발라놓은 오만 장비를 들고 산과 들을 점령해버린 캠핑족들이 좋은 자릴 다 차지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사방에 돈 칠을 해놓는 것을 일컬어 '경제 성장' 또는 '발전'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2015년부터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함께 사는 공동의 집, 지구를 더불어 사는 집으로 지키고 가꾸어가자는 뜻입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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