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법도 정치화 경험 겪어
본인 성향 아닌 법 요구에 충실
진보와 보수의 균형과 타협
'김명수 대법원장' 변화 기대
"판사들이 법복을 입는다고 그것이 우리를 더 현명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법복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독립적이며,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난 4월 취임한 닐 고서치 미국 연방대법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날 밝힌 소감이다. 그는 "자신이 내린 판결을 항상 좋아하는 법관은 대체로 '나쁜 법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했다. "법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애쓴 결과"라는 것이다. 고서치 대법관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른바 보수주의 시각에서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을 충실히 해석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과 성향을 판결에 반영하는 것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사법부의 지형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에 있었다. 반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법관, 법원 행정처를 거치지 않은 경력. 전임자보다 13기나 아래인 연수원 기수. 파격 중 파격 인선으로 진보 성향 사법부 구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우리 법원에 미칠 영향은 어떨까. 일부의 염려대로 대통령과 '정치적 코드'를 맞추는 사법부가 가시화될까. 단정할 수는 없으나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종신직인 미국 연방 법관과 달리 우리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은 임기가 제한되어 있다. 대법관도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모든 대법관을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지명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헌재 역시 마찬가지.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가 각각 3인씩 재판관을 지명한다. 정권 마음대로 구성을 좌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기대하는 변화는 보다 현실적이다. 사법부의 연공서열 문화를 완전히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법원장보다 기수가 높은 법관이 용퇴하는 관행이 사라질 것이다. 본인의 말대로 "31년 동안 재판만 해 온" 대법원장 후보자이다. 법관이 본업(?)인 재판에만 충실하면 되는 사법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과 법원 행정처를 중심으로 일체화'관료화된 사법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사법부지만 때로 진보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여 있을 때 사법부가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보수'진보 등 대법관의 성향이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결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진보의 엔진과 보수의 브레이크가 적절한 균형과 타협을 통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왔다. 삼권분립에서도 이런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진보의 엔진이 강할 때 법원은 강력한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한다. 보수가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을 때 법원은 진보의 엔진을 가동해야 한다. 고서치 대법관은 청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법을 위반했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미국보다는 덜하지만 우리 사법부도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를 경험하고 있다. 행정수도 위헌, 통진당 해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등에서 헌재는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빈도는 약해도 법원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국정원 댓글 사건,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 재판 등에서 정치적 사건의 사법적 결단을 요구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변화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법관들 스스로의 자세이다. 법복을 입을 때마다 그것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중립성, 독립성, 그리고 용기가 그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진보의 엔진과 보수의 브레이크가 적절하게 가동될 수 있게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론이 아니라 법이 요구하는 결론만을 고민하는 법관이 '좋은 법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법부의 신뢰를 두텁게 하는 첩경은 그런 법관이 많아지는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