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간경화증 투병 박정은 씨

"나만 바라보는 아이·어머니 생각에 눈물만…"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박정은(가명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박정은(가명'32) 씨는 간경화증으로 배에 복수가 차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완치를 위해서는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3천만원의 비용 탓에 한숨만 쉬는 딱한 처지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지난 8월 31일, 경북대병원의 한 병실에 누워 있던 박정은(가명'32) 씨는 크게 부풀어 오른 배를 붙잡고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 간경화증으로 배에 복수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깡마른 몸에 낯설 만큼 부풀어 오른 배는 복수를 빼낸 바늘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마저도 다른 장기에 영향이 있을까 봐 조금씩 빼내다 보니 고통이 가실 날이 없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이지만 박 씨는 집에 혼자 두고 온 아들이 걱정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은 육아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아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로 가족 곁을 떠나버렸다. 박 씨는 "내가 없으면 아들을 돌볼 사람은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뿐"이라며 "집에서 애를 직접 돌봐야 마음이 놓이는데 병이 나을 기미가 안 보여 막막하다"고 했다.

◆출산 100일 만에 남편 떠나

박 씨는 처음 아이가 생겼을 때를 떠올리며 "유일하게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남자 친구와 특별히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오랜 시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인 줄 알고 있던 상황에서 아이 소식은 갑작스레 내려온 축복 같았다. 박 씨는 "평소에도 건강한 편이 아니어서 평생 아이가 안 생길 줄 알았다. 계획된 아이가 아니었고 남자 친구도 공사장에서 잡부 일을 하며 일당을 받는 상황이었지만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고 함께 살며 사실상 남편이나 다름없었던 남자 친구가 '도저히 지금 수입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도망가버렸다. 출산의 기쁨은 순식간에 미혼모라는 꼬리표로 돌아왔다. 박 씨는 "혼자 보자기에 아이를 안은 채로 출생신고를 하고 오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며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 걱정이 많았는데 남자 친구에게도 버림받으니 너무 막막했다"고 떠올렸다.

홀로 남겨진 박 씨는 생계를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동네 다방에서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떳떳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에다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까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월 200만원이라는 일자리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박 씨는 "동네에서 일하다 보니 부끄러운 상황도 종종 있었지만 아이를 위해 꾹 참고 일했다. 배달 도중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와 눈이 마주친 적도 있다. 놀라고 민망해서 서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지나쳤다"며 "너무 부끄럽고 내가 처한 현실이 서러워 눈물만 흘렸다. 아이한테도 안 좋은 소문이 들릴 것 같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특이체질로 간경화증 찾아와

다방 일을 하다 학부모와 마주친 일 이후 박 씨는 술로 현실에서 도피했다. 하지만 특이체질로 간이 술을 전혀 소화하지 못하는 박 씨에게 술은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몇 달 동안 1주일에 3번, 한 번에 소주를 한 병씩 먹는 생활이 이어지자 간경화증이 찾아왔다.

고통을 참지 못해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가 '죽으려고 환장했느냐'며 호통을 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박 씨는 "입원 치료가 불가피해 입원을 했지만 불어날 병원비가 너무 걱정돼 도망쳐 나온 적도 있다"며 "몸은 아프지만 나만 바라보는 아이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치료에 온전히 집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 씨가 완치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간 이식이다. 현재 받고 있는 입원 치료는 이식 수술 전까지 다른 장기가 다치지 않도록 막는 수준에 불과하다. 수술이 늦어질수록 병원비가 하염없이 늘어나는 처지이다. 오빠가 소식을 듣고 적합성 검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모아둔 돈이 전혀 없는 박 씨 입장에서 3천만원의 간이식 비용을 마련할 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아예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병만 나으면 오롯이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보고 싶죠. 병원에 있느라 아이 생일도 챙겨주지 못했는데…."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