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우리가 남이다

미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 박사. 동아대학교 졸업

자신을 업데이트 못한 갑들

피도 안 섞였는데 통제·간섭

남들에게 예의 갖추는 사회

후손들이 살아갈 공정 한국

30년 전 미국의 한 TV 코미디. 할머니가 속도위반으로 걸렸다. 그런데 경찰은 그 할머니의 초등학교 제자였다. 할머니는 '매우' 반가워하며 훌륭하게 컸다, 내리막길이었다는 등으로 말씀을 하시지만 그 경찰은 공손하게 오르막길이었다고 설명하며 범칙금을 발부한다는 내용이다. 그때부터 30년 후인 오늘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법대로 할 수 있을까?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길에는 여러 가지 정신적 장애물이 있다. 지인이니까 내가 봐주고 다른 사람도 봐주고 그러다 보면 법이 무의미한 사회가 된다. 만약 그 할머니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일을 지키지 않았을 때 제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작은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얘기. 유명한 땅콩사건에서 당사자보다 먼저 '엉뚱'하게 첫 구속 처벌을 받은 사람은 국토교통부 조사관이었다. 개인적으로 봐주면 그는 죄가 없다. 그는 그냥 우리 사회에서 교육받고 보편적인 경험을 하며 살아온 대로, 그리고 매몰차지 않게 상황을 설명해 주는 한국의 정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한국 사회도 점차 엄격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의 행위 규칙을 업데이트(update)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사실 우리는 OECD 국가임에도 공정성 면에서는 오히려 매우 늦은 감이 있다. 그가 행한 한국의 정 혹은 편의 봐주기는 이제 비밀 누설과 증거인멸이라는 중죄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살기 참 어려워졌다. 요즈음은 누구나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냥 낙마한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깊이 떨어져 더 아플 것이다. 그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이전에는 심하게 행패를 부린 사람들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갑들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갑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이제 을 아닌 을들이 참지 않는다.

사실 정상적인 현대사회에서 갑과 을은 무의미한 말장난이다. 소위 선진국들은 수평 사회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데 반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수직 사회를 유지해 왔다. 조금 변명하자면 우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일본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조상 탓이라는 못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군대도 아닌데 줄을 세우고, 확성기를 편하게 쓰며(아파트 내 방송도 포함해서), 빠짐없이 모이라는 말을 하며 집단적으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누군가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한 통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행패 수준으로 서로의 자유를 구속하고 통제함을 배우고 또 곳곳에서는 이를 계승까지 하고 있다.

유교적인 수직 사회도 괜찮았었다. 장수가 선두에서 싸우고, 할아버지가 한집에서 지혜를 주고, 부모가 정성으로 양육하고, 흔히 말하는 노블(noble)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이 도시의 공장에 몰리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컴퓨터의 등장으로 부장보다 신입사원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면서 수직 질서가 무너졌다. 그런데도 교수를 비롯한 여러 집단에서 스스로를 갑이라고 착각하는 행태에서 줄줄이 떨어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정신세계를 업데이트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 현대사회는 자신이 갑이 되는 환경을 스스로 경계하고 조직을 개편하여 형평성을 유지해야 함께 지속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최근 '백인' 우월주의를 은근히 지지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해 분노한 사람은 미국 내 동양인이나 아프리카 출신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코케이전(caucasian'미국에서 백인 집단을 표현하는 말)들이었다. 자신들이 우월 인종으로 적시되는 것에 대해 자유와 평등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경계하는 적절한 행위이다.

이제 우리는 남이다. 동향이나 동문 등 여러 가지 끄나풀로 사조직을 만들어 끼리끼리 봐주는 패거리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동물을 포함해 상대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우리의 후손이 언제 어디서 약자로 살더라도 공정하고 배려받는 환경을 지금부터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껏 피도 섞이지 않은 남인 사람을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함부로' 간섭하고 통제하려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남이라고 적대시하거나 무관심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첫 손님 대하듯 예의를 갖추고 상대의 의사와 자유를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한국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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