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맨몸으로 도시로 나온 시골 청년. 그는 약국 직원, 제약회사 영업사원을 거쳐 점토벽돌로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뚝심, 그리고 성실로 일궈낸 성과다.
한삼화(72) 삼한C1 회장. 한 회장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목숨 걸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렇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숱한 어려움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어머님의 '정성' 덕분이다"고 했다.
그는 예천 공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 앞에 서서 벽돌 제작 과정을 꼼꼼히 설명했다. "점토벽돌을 널리 보급해 도시를 자연친화적인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왜 점토벽돌에 목숨을 걸었는가?
▶흙은 생명의 근원이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유럽, 미국 등 잘사는 나라에 가면 거의 벽돌집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수많은 신소재가 등장했지만, 오래된 재료인 흙벽돌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흙은 인간에게 이롭다. 완벽한 친환경 소재다. 사람에게 좋은 제품을 만들어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용어가 헷갈린다. 점토벽돌, 황토벽돌, 흙벽돌은 다 다른가?
▶모두 같은 말이다. 엄격히 말하면 점토벽돌이 공식 명칭이다. 황토벽돌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는 용어다. 점토는 미세한 흙의 입자이다. 흙에는 대체로 철분이 7~8% 포함돼 있다. 이런 흙을 구우면 붉게 변한다. 반면 철분 비중이 1% 안팎인 고령토는 구우면 흰색을 띤다.
-지난 7월 말 열린 대구국제폭염대응포럼에서 점토벽돌의 온도 저감 효과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점토벽돌의 장점은 무엇인가?
▶친환경 제품이다. 즉,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온도 저감 효과가 뛰어나다. 서울시품질시험소가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점토벽돌은 일반 아스팔트 바닥보다 표면 온도가 최대 22℃ 낮았다.
단열 기능이 우수하다. 점토벽돌을 쓰면 에너지를 30% 정도 절약할 수 있다. 습도를 조절한다. 점토벽돌은 습도가 높으면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는다. 냄새를 없애고, 인체에 좋은 원적외선을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삼한C1이란 회사 이름은 무슨 의미인가?
▶기존 '삼한'이란 이름을 '삼환'으로 잘못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 고민을 했다. 그래서 C1을 덧붙였다. 이름에 회사의 비전을 담은 것이다. C1은 '세라믹 No. 1'이란 뜻이다.(세라믹은 고온에서 구워 만든 비금속 무기질 고체 재료. 유리, 도자기, 시멘트, 내화물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연간 1억 장 이상 벽돌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불량률이 제로에 가깝다. 비결은?
▶우리 회사는 150종에 이르는 제품을 생산한다. 하지만 불량률은 0.1~0.2% 수준이다. 원칙에 충실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리정돈과 기계 관리를 철저히 한다. 공장에 견학을 온 사람들이 첨단 반도체 공장보다 깨끗하다고 칭찬할 정도다.
품질은 세계에서 으뜸이라고 자부한다. 벽돌 규격의 오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품질을 좌우한다. 오차의 정도에 따라 내구성과 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치수 오차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건축용(190×90×57㎜)의 경우 한국산업규격(KS) 기준은 길이, 너비, 두께의 오차 기준을 각각 ±5.0, ±3.0, ±2.5㎜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삼한C1 제품은 세 항목 모두 ±1.0㎜로 훨씬 엄격한 기준에서 생산된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내 성모당 광장 등 여러 곳에 벽돌을 기증했다.
▶점토벽돌이 좋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점토벽돌은 인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 점토벽돌의 우수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일반 제품에 비해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나?
▶그렇지 않다. 점토로 만든 보도블록의 경우 콘크리트 제품보다 20~30% 정도 비싸다. 하지만 미관과 수명을 고려한다면 점토 블록이 훨씬 우수하고 경제적이다.
-삼한C1의 벽돌이 사용된 유명 거리나 건축물이 있다면?
▶대구의 경우 범어대성당, 계산성당, 계명대 본관 및 아트센터 등을 꼽을 수 있다. 전국적으로는 덕수궁 돌담길, 독립기념관 다목적교육관, 부산 APEC누리공원, 인천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경희대 용인캠퍼스, 대전대 30주년 기념관 등이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만 타고 다니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1977년 '포니 원'이 내 인생의 첫 번째 차였다. 이후 포니 투, 스텔라, 쏘나타, 그랜저, 에쿠스로 이어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공장을 견학했던 것이 계기였다. 그때 눈물이 흘러나왔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국산차를 개발하고,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른 현대가 자랑스러웠다.
-평소 직원들에게 '기본'을 강조한다고 들었다.
▶기본을 지켜야 조직이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올해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삼한C1인의 자세'에 대해 얘기했다. 그때도 '모든 일의 행동과 판단에는 기본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직원들의 열정도 중요하다. 열정을 멈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향후 사업 계획은?
▶예천 공장을 확장할 생각이다. 350억원을 투자해서 건축용 큰 벽돌을 생산하는 시설을 갖추려고 한다. 속이 빈 벽돌인 할로우 브릭(hollow brick)도 만들고 싶다. 할로우 브릭은 유럽에서는 많이 사용된다. 이 제품은 단열성이 뛰어나고 건물의 하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약국 직원, 제약회사 영업사원 등의 직업을 거쳤다. 고생을 꽤나 했을 것 같다.
▶시골(고령군 우곡면)에서 농사를 짓다가 열아홉 살에 돈을 벌기 위해 대구로 나왔다. 옛날에는 다들 가난했다. 배고픔만큼 서러운 게 없다. 나는 배불리 먹고 싶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게 나의 사명이었다.
첫 직업은 약국 직원이었다. 제대 이후 약 도매상에서 일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약국과 병원에 약을 배달했다. 10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1978년 벽돌 판매업체를 인수했다. 그게 사업의 시작이었다.
-홀로 6남매를 키웠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많겠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
▶어머니는 2000년에 90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일찍 별세하시는 바람에 어머니가 홀로 6남매를 키웠다. 어머니는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4대 봉사(奉祀)를 하셨다. 항상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신 뒤 제수를 장만했다. 제사를 모신 뒤에는 이웃들과 음식을 나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절에 가서 자식들을 위해 부처님께 빌고 또 비셨다. 어머니의 그런 지극정성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됐다.
1994년 예천공장 준공식 때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 매우 기뻐하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동화사 신도회 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머니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회장 제안을 받아들였다.
-존경하는 인물로 고인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을 자주 거론한다고 들었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은 우리에겐 신화다. 그들은 맨바닥에서 산을 세웠다. 지금 우리가 먹고살 수 있도록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들이다. 젊은 세대는 배고픔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불과 수십 년 만에 농업시대에서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로 진입했다.
-1981년에 열린 제25회 매일어린이사진전에서 '어린이는 태양'이란 작품으로 금상을 받았다. 사진작품 활동은 언제부터 했나?
▶1970년대에 사진을 배웠다. 당시 대구 중구 남일동에 있던 매일신문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진부장을 하셨던 신현국 선생을 사사했다. 매일어린이사진전을 비롯해 여러 대회에 출전해 상을 많이 받았다. 매일사진동우회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20년쯤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예천공장 준공식 이후 사진에서 손을 놓게 됐다. 일이 바빠서 사진 찍으러 다닐 시간이 없었다.
◆한삼화는?
▷1945년 고령군 우곡면 출생
▷학력=경북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경북대 명예경영학 박사
▷경력=대구시생활체육회 부회장/경북골프협회 회장/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북 부의장(12'13'17기)/신지식인 선정(전국 1호, 중소기업청)/국민훈장 동백장/경북대총동창회 부회장(현)
◆삼한C1은?
▷1978년 ㈜삼한상사 출범
▷1983년 달성군 논공 소재 공장 가동
▷1986년 울진군 후포 소재 ㈜한옥 인수 가동
▷1990년 예천군 풍양 소재 ㈜삼한 법인 설립
▷1994년 ㈜삼한 예천 제1공장 준공 및 생산 가동
▷1998년 ㈜삼한기술연구소 설립
▷2001년 ㈜삼한C1으로 상호 변경
▷2003년 예천 제2공장 준공
▷2005년 대구 동구 신천동 본사 사옥 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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