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싼값에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는 것은 산란계 밀식 사육을 통한 대량생산 덕분이다. 밀식 사육과 대량생산을 가능토록 한 것은 살충제와 항생제, 적절한 시설이다. 그러니 우리가 걱정하는 살충제와 항생제, 가혹하고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하는 좁은 닭장은 산란계 대량 사육에 혁명을 가져온 약물이고,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그처럼 고마운 살충제와 항생제, 밀식 사육이 기피하고 싶은 물질, 폐하고 싶은 시스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선 배를 채우고 영양실조에서 벗어나자'는 인식에서 '윤리적으로 생산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쪽으로 변한 것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이 일어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소비자들은 살충제와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고 생산한 달걀을, 지금처럼 싼값에 먹기를 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살충제와 항생제 없이, 가혹한 밀실 사육 없이 지금처럼 싼값에 달걀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우리에게 없다. 밀식 사육을 포기한다면 달걀 생산량이 급감할 것이고, 가격은 치솟을 것이다.
살충제 달걀을 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몇 개 있다. 첫째는 달걀을 아예 안 먹는 것이다. 둘째는 산란계를 밀식 사육하면서도 살충제를 살포하거나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닭이 병해충에 시달리지 않고 알을 쑥쑥 낳을 수 있는 사육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셋째는 산란계에 살충제나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았음을 철저히 보증하도록 하고, 그에 합당한 비싼 값을 지불하고 달걀을 사먹는 것이다. 넷째는 집집마다 닭을 몇 마리씩 키워 살충제와 항생제에서 자유롭고 신선한 달걀을 먹는 것이다. 어느 방식이든 당장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도록 외부 환경을 바꾸는 데 몰입해왔다. 살충제와 항생제, 밀식 사육 역시 '많은 달걀을 싼값에 얻기 위해'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이다.
닭의 생존 환경을 그처럼 확 바꿔버린 탓에 좁은 닭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닭을 어느 순간 풀어놓으면 걷지도 못한다고 한다. 병아리 때 이후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생활에 맞게 외부 환경을 좀 더 조성해야 하는 곳이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일부,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이 그런 곳에 해당한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 한국은 그런 정도는 아니다. 달걀이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달걀'을 다른 채소나 과일, 곡식 등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다.
싼값에 많이 먹기 위해 닭을 좁은 닭장에 가두고, 살충제와 항생제를 투입한다. 싼값에 많이 먹기 위해 과일과 채소에 농약을 무한대로 뿌리고, 겨울에도 여름 과일과 봄 채소를 먹기 위해 갖가지 오염 설비를 설치한다. 고추와 포도의 착색제, 사과의 빛 반사판 역시 사람의 지나친 욕망에서 비롯됐다.
적어도 현대 한국인은 먹을 것이 부족해서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아사하지 않는다. 못 먹어서 얻는 병보다, 많이 먹어서 얻는 병이 더 많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비만에 의한 심혈관 질환 등등.
살충제 달걀에 대한 공포와 기피심은 우리가 인식의 전환점에 닿았음을 보여준다. 이번 기회에 적어도 먹을 것과 관련해서는 많이, 빨리, 집약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야 한다. 가혹할 정도로 인간 편리에 맞추는 음식물 생산 방식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독자들 중에는 농담처럼 여기신 분들도 있겠지만, 앞서 밝힌 '살충제 달걀을 안 먹을 수 있는 방법' 중 네 번째 방법은 곱씹어볼 만하다. 전문 양계농가뿐만 아니라 쌀농사, 채소농사, 과일농사를 짓는 다른 농가는 물론이고, 도시의 단독 주택에서도 제각각 2, 3마리의 닭을 키운다고 생각해보시라. 우리가 그토록 우려하는 살충제와 항생제, 좁은 닭장의 참혹함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된다. 상추, 고추, 들깨, 근대, 시금치 두세 포기씩만 집에서 직접 길러도 농약에서 멀찍이 멀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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