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이건 '다크 투어리즘'이 아니다

'다크 투어리즘'은 조성하는 게 아니다. 우리말로는 '역사교훈여행'이지만 국립국어원이 그렇게 정해 놓았을 뿐이다. 실제 의미는 우리말처럼 그렇게 가치 지향적이지 않다. 오히려 가치(value)나 이상(ideal) 보다는 현상(phenomenon)쪽에 가깝다.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에 고유한 의미를 붙이고 처음 통용시킨 사람, 영국의 말콤 폴리와 존 레넌 교수에 의하면 그렇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나 난징대학살기념관처럼,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 죽음과 재난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현상, 이걸 두고 두 사람은 다크 투어리즘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왜 그런 곳을 찾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얻고 미디어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등이 이들의 주요 관심사였고 죽음과 공포를 상품처럼 맛보려는 사람, 즉 추모가 아니라 그곳에서 오락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의 심리와 윤리의식 등도 눈여겨보았다. 따라서 다크 투어리즘이 되려면 먼저 죽음, 재난 등이 발생해야 하고 그 현장이 분명해야 하며 그걸 알게 된 사람들이 실제로 가보고 싶은 욕구를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다크 투어리즘의 활성화는 의외로 간단하다. 충격적이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 최대한 많은 사람이 죽고 그것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알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 그곳을 잘 보존해야 한다.

중구청이 달성공원 앞에 순종의 동상을 세워놓고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건 다크 투어리즘이 아니다. 다크 투어리즘이 되려면 최소한의 요건은 갖추어야 한다. 한 비운의 황제가 슬프게 걸었다거나, 그때 민심이 어떠했다거나, 그로부터 얼마 뒤 나라를 빼앗겼다는 등의 이야기로, 그런 관념적 소재로 다크 투어리즘이 발생했다는 예를 들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순종이 달성공원 앞에서 암살을 당했다거나 그를 보러 온 군중을 일본군이 학살했다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유령이라도 나타났다면 모르겠다. 더 어안이 벙벙해지는 건 이렇게 해놓고 여기에서 항일, 구국정신의 교훈을 얻으라고 말한다는 거다. 혹시라도, 나라를 잃으면 저렇게 동상이 세워진다고 생각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 같은데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동상을 보면서 민족의 비극과 통한의 역사를 생각해낸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하나도 안 닮은 순종을 순종이라 생각하고 저 별생각 없어 보이는 눈에서 백성을 걱정하며 먼 곳을 응시하는 눈길을 찾아낸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동상 뒤편 안내판 앞에서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란 제목을 보며 팝송 대신 암울했던 시대상과 순종의 슬픔, 백성의 염원까지 떠올리는 상상을 해낸단 말인가?

시민을 이렇게 막 대하면 안 된다. 이건 촌극도 못 된다. 이건 시민을 무시한 행정 권력과 자칭 전문가들이 빚은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한 참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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