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는 김해동(가명'48) 씨는 흔히 말하는 '기러기 아빠'다. 김 씨가 수년째 취업을 하지 못하자 아내는 5년 전 가족이 있는 베트남에 딸 김지영(가명'9) 양을 데리고 가버렸다. 어릴 때부터 뇌병변을 앓아온 김 씨에게 자취 생활은 힘겹기만 하다. 고장 난 채 방치된 냉장고 안에는 까맣게 썩은 음식으로 악취가 가득했고, 전자레인지도 고장 나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떠나버린 가족들의 빈자리에는 우울증이 대신 자리 잡아 김 씨는 수면제 없이는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열악한 생활을 힘겹게 버텨가던 중 지난 8월 초 베트남에서 들려온 딸의 교통사고 소식은 김 씨를 더욱 흔들어놨다.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고 소식을 처음 전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딸이 중태라는데 시골이라 연락도 되지 않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비참한 심정입니다."
◆국제결혼으로 생긴 가족 3년 만에 떠나
국제결혼을 통해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김 씨는 2009년 아이를 낳고 함께 보낸 3년이 정말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불혹이 넘도록 혼자 생활하던 김 씨에게 국제결혼 사업을 하던 지인이 베트남 여성을 여럿 소개해준 끝에 힘겹게 만난 사람이었다. 김 씨는 "5명 정도 만나봤지만 내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장애가 있으니 다들 결혼을 꺼렸다"며 "지금 아내만이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고 바로 결혼했다. 없을 줄 알았던 가족이 생기니 너무 행복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행복은 3년을 채 넘기지 않았다. 아내는 한국 생활에 도통 적응하지 못했고 집에 수입이 없어 집안 사정은 어려워져만 갔다. 게다가 집의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아 딸은 잔병치레를 반복했다. 이에 참다못한 아내는 2012년 어느 날 딸과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에는 딸아이를 봐 줄 가족이 있고 공기가 좋은 시골이라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 씨는 "부모님, 형과 연락을 끊어 한국에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며 "제대로 가족을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참하고 미안해 가겠다는 아내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교통사고로 딸 중상 입었지만 치료비 막막
지난 8월, 아내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설 무렵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은 이후 반 년 만의 전화라 반갑게 전화를 받은 김 씨의 얼굴은 이내 일그러졌다. 딸이 처남의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하던 중 지나던 차에 부딪혀 중상을 입었고, 처남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얘기였다. 김 씨는 "오랜만에 전화가 왔기에 홀로 생활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하려 했었는데 오히려 딸이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너무 당황스럽고 무기력했다"고 털어놓았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전신에 부상을 입고 즉시 병원으로 옮겨진 김 양은 수차례 수술을 받고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김 씨는 1천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 씨는 "베트남에는 병원비를 내지 않고 도망가는 환자가 워낙 많아 딸도 지금 병원에서 거의 감시받는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모아둔 돈이 없어 대출도 알아봤지만 어느 곳도 돈을 빌려주는 곳이 없었다. 당장 베트남으로 날아가고 싶을 만큼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형광등도 제대로 켜지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김 씨의 유일한 즐거움은 아내와 딸의 모습이 담긴 가족 앨범을 뒤적이는 것이다. 그마저도 딸이 5년 전 한국을 떠나, 세 살 무렵까지의 사진이 전부였다. "딸이 완전히 나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어요. 딸과 아내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새 삶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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