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직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패전국 독일을 덮쳤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국채를 대거 발행해 헐값에 내다 팔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이다.
1922년만 해도 환율이 1달러에 9마르크 정도였다. 하지만 이듬해 11월에는 1달러에 4조2천억마르크로 폭락했다. 물가 혼란도 상상을 뛰어넘었다. 1918년 12월 베를린에서 빵 1㎏ 가격은 0.5마르크 수준이었다. 그런데 1923년 말에는 자그마치 2천억마르크로 뛰었다. 그만한 지폐를 옮길 수도 없으니 애초 거래 자체가 불가능했다.
당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짐작게 하는 일화가 있다. 현금을 자전거에 싣고 가다 강도를 만났는데 현금은 버리고 자전거만 빼앗아갔다거나 오전과 오후 물가가 달라 하루에 노동자 임금을 두 차례 지급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 무렵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인접한 독일 국경 소도시 켈(Kehl)을 방문한 작가 헤밍웨이도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동이 날 정도로 케이크가 많이 팔려도 빵 가게 주인의 표정이 매우 어둡더라며 일기에 썼다. 빵을 굽는 동안 마르크화 가치가 계속 폭락해 팔수록 손해가 났기 때문이다.
1945년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은 헝가리의 경우 물가가 두 배로 뛰는데 약 15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2008년 2억% 이상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짐바브웨나 최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폭동까지 일어난 베네수엘라의 사례도 예사롭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이 연간 임금인상률을 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하는 임금 체계 개편에 합의했다. 대기업 노사가 매년 임금 협상 없이 물가에 연동해 월급인상률을 자동으로 결정하는 첫 사례다. 물가지수가 0이면 동결,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별도 협의를 하는 조건이다. 올해는 기본급 1.0%(호봉 승급분 제외) 인상에 합의했다.
한국은행이 상품'서비스 등 481개 품목을 대상으로 가격 변동을 조사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보면 최근 3년간 0.4~1.6%를 오르내렸다. 체감 물가는 별개로 치더라도 변동 폭이 2% 내외로 안정된 상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 기업 평균 임금상승률 3.4%와 비교하면 큰 차이도 없다. 갑작스러운 경제 불안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적용하기가 곤란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가 그만큼 안정된 수준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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