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최고 명당 위치한 운조루
가난한 이웃 위해 쌀 뒤주 열어놔
원효 등 국사급 스님 수도한 사성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환상적
전남 구례는 봄이면 산수유, 벚꽃, 진달래꽃밭으로, 가을에는 선명한 핏빛의 단풍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지리산을 병풍처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섬진강을 젖줄로 삼은 기름지고 풍요로운 고장이다. 또한 인심 좋고 여유 있는 산하촌 사람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다. 예전에는 백제의 구례현이었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때 현재의 이름으로 곡성군에 속하는 현이었다. 지리적인 환경과 기름진 땅 덕택에 신라와 백제의 싸움이 잦았으며, 왜구의 침입도 끊이지 않은 곳이다. 특히 6'25전쟁 때 아픈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리산 자락의 많은 사찰 중 국보가 가장 많은 화엄사,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집 운조루, 사성암으로 이른 가을여행을 떠나본다.
◆지리산 사찰 중 국보가 가장 많은 화엄사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華嚴寺)는 1979년 발견된 '신라화엄경사경'(新羅華嚴經寫經)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하고 선덕여왕 11년(642)에 자장율사가 중창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연곡, 천은, 쌍계, 실상, 칠불, 대원, 내원사) 중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찰이 실상사라면, 국보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찰(국보 제67호 각황전, 제12호 석등, 제35호 사사자삼층석탑, 제301호 영산회괘불탱)은 화엄사이다.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원래 이름은 장륙전(丈六殿)으로 부처님의 몸을 '장륙금신'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조선 중기인 숙종 25년(1699)에 공사를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했다. 숙종으로부터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뒤 사찰의 격이 높아져 선교양종(禪敎兩宗)의 대가람이 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는 툭 터진 통층(通層)이다. 조선 궁궐의 정전인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과 같은 형태의 건축물이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이다. 초창기에는 벽면을 돌에 새긴 화엄경으로 장식하였다고 한다. 화려하고 격조가 있었고 웅장함이 자랑이었을 것이다.
각황전 앞마당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높이(6.4m)의 석등이 있다. 눈여겨 볼 부분은 간주석(竿柱石)으로 신라 석등의 보편적인 형태인 팔각을 따르지 않은 장구 모양의 고복(북 모양)형이다. 섬세한 조각 솜씨는 고귀한 귀부인을 연상케 한다.
각황전 왼편 뒷산을 조금 오르면 우리나라 이형(異型)석탑으로 가장 우수하다는 불국사 다보탑과 견주어 손색이 없는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 탑 주위에는 동백 숲과 반송, 왕벚나무가 어우러져 사계절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사사자삼층석탑은 명칭 그대로 4마리의 사자가 탑신부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형태인 2층 기단의 삼층석탑이다. 4마리의 사자상 안쪽에는 합장한 스님상이 있다. 세심히 관찰해야만 보인다. 스님상은 이 절을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한다. 효심이 깊었던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자 탑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길쭉한 네모의 배례석 앞에 세 개의 돌기둥 안쪽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모습의 인물상이 조각된 작은 탑이 인상적이다. 이런 연유로 이 일대를 효대(孝臺)라 부른다. 매년 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홍매화와 올벚꽃이 화려하게 피어 사진작가들의 단골 촬영지로 인기가 있다. 고려시대 석탑이 있는 산내암자 구층암도 주변에 있다.
◆전라도 최고 명당 운조루
삼남의 사대 길지가 경주 양동, 풍산 하회, 안동 내앞, 봉화 달실마을이라면 전라(전주+나주)도 최고 명당은 운조루(雲鳥樓)라 할 것이다. 운조루는 지리산 노고단을 태조산, 병풍산을 배산으로 한 지형이며 오봉산을 안산으로, 백운산을 조산으로 감싸 안고 있는 명당이다. 구만들 너른 농토를 종자 뜰로 삼고 섬진강을 젖줄로 두고 있다. 풍수지리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이곳이 명당임을 직감할 것이다. 운조루는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한다. 토지(吐指)는 원래 금가락지를 토해낸다는 뜻으로. 토지면 오미리 일대는 풍수지리적으로 금환락지, 금구몰니, 오보교취형이라 한다. 옛 여인들은 가락지를 소중히 여겨 간직하는 사랑의 징표로서 성행위를 하거나 출산할 때만 빼어놓았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가락지는 생산을 뜻하며 이곳은 부귀, 영화가 상존해 왔다.
운조루는 1776년 무관 유이주(柳爾胄, 1726~1797)가 지은 민간 가옥의 사랑채 당호이다. 지금은 가옥 전체를 운조루라 부른다. 힘이 세고 용기가 뛰어난 유이주는 기개가 대단한 무인이었다. 어려서 문경새재를 넘다가 호랑이를 만나자 도망가지 않고 채찍으로 호랑이 얼굴을 내리쳐 쫓아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운조루 1천여 평의 대지에 건평이 100평이 넘는 큰 규모의 조선시대 민간주택이다. 집 전체의 형태는 一자형 행랑채(24간), T자형 사랑채(22간), 口자형 안채(36간), 안사랑채(소실됨), 사당(2간) 다섯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 행랑채 앞에는 배롱나무에 둘러친 인공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안채 입구 이동식 통나무 뒤주에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씨가 눈길을 끈다. 가난한 이웃들이 언제든지 쌀을 퍼갈 수 있게 했던 뒤주라고 한다. 당시 사회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원효·의상·도선·진각이 수도한 사성암
구례읍 소재지 동쪽 앞 오산(鰲山) 정상에 있는 암자가 사성암(四聖庵)이다.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건립하였을 때는 오산사였으나 이후 원효, 의상, 도선, 진각 4명의 국사(國師)급 스님이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인조 8년(1630)에 중건했으며 1939년 이용산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이 암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한쪽 면만 붉은 기둥을 세워 지은 유리광전 건물이 특이하다. 내부 암벽에는 음각마애여래 입상이 있다. 전체 높이 3.9m로 머리에는 넓적하고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다. 가사는 양 어깨에 걸쳐 입었는데 왼손 어깨의 옷 주름이 촘촘하고 격자무늬가 있는 모양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불상 뒤에는 광배가 그려져 있고, 머리 주위에 있는 2줄의 띠가 특이하다. 광배에는 불꽃무늬와 덩굴 문양이 있어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과 흡사해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을 보호하는 유리장식이 실내조명에 반사되어 자세히 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사성암의 백미는 성인들이 수도할 만한 장소임에 손색이 없는 환상적인 경관이다. 눈 아래 펼쳐지는 풍요로운 들판, 힘줄처럼 아스라이 보이는 섬진강, 크고 장엄함으로 다가오는 지리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사성암 가는 길은 도보(약 40분)로 가는 방법과 주연마을에서 약 10분 정도 지그재그로 산길을 오르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 Tip
*가는 길: 대구→광주대구고속도→남원교차로→구례IC→화엄사(소요시간 약 2시간 20분)
*화엄사 입장료: 성인 3천원, 운조루 입장료 성인 1천원, 사성암은 입장료가 없으며 사성암 마을버스 요금은 1인 3천원이다.
*구례농업기술센터: 종합생태학습장이라 부를 만큼 넓은 부지에 야생화연구소, 압화전시관, 농경유물전시관, 잠자리생태관이 조성되어 있다. 입장료는 없다. 061)780-2073.
*지리산온천관광지: 산동면 소재지에 있는 지리산온천랜드는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천연유황온천으로 노천온천 테마파크와 대온천장이 있다.
*그 옛날산채식당(061-782-3223): 화엄사 입구에 있는 이 식당은 화려하지 않은 옛 건물에 2대째를 이어오는 전통을 자랑하며 '욕쟁이 할머니 식당'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산채정식에 약 20가지의 정갈하고 토속적인 밑반찬이 나온다. 1인분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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