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의 모 전문대 총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평소 부드럽기로 소문난 총장은 현 정부의 대학 정책을 논하기 시작하자 흥분했고 이내 면담 자리는 성토의 장으로 바뀌었다. "지난 정부에서도 이러지는 않았어요. 현 정부에서 전문대는 '서자'(庶子) 중의 서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의 변(辯)에는 문재인 정부의 전문대 정책에 대한 우려와 실망이 가득했다.
요즘 대구의 전문대 관계자들을 만나면 문재인 정부의 대학 정책에 대한 불만이 크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 방안이 나오지는 않아 단정 짓기는 이르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봤을 때 뚜렷한 전문대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학가에서는 '전문대 차별'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국정 과제에서부터 전문대는 빠져 있다. '전문대 육성'을 국정 과제로 넣었던 지난 정부와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전문대 정책에서 실망스러웠다는 지난 정부보다 더 후퇴했다는 의견까지 제기된다.
단적인 예로 '대학자율역량강화지원사업'(ACE)을 들 수 있다. ACE는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중 나름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사업이다. 당초 교육부가 일반대에 실시하던 ACE를 전문대로 확대하기로 하고 190억여원을 배정했으나 기획재정부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는 일이 발생했다. 전문대들은 실무형 인재를 키우는 데 특화된 만큼 '잘 가르치는 대학'을 표방하는 ACE에 더욱 적합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문대 사업인 특성화 전문대 육성사업과 사회맞춤형 산학협력선도 전문대학 육성사업 등도 예산이 삭감됐다.
전문대는 고등교육 분야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정부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전국적으로 전문대학이 전체 대학의 42%를 차지하고 있고 입학생 수로는 전체의 37%, 재학생 수로는 25%를 담당하고 있는데도 지난해 교육부 고등교육 예산 5조1천896억원 가운데 전문대학 예산은 3천388억원(6.5%)에 그쳤다.
전문대 육성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와 '친서민' 정책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 전문대는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인재 양성에 첨병 역할을 해왔다. 현재도 전체 취업자의 30%가 전문대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대구에서는 이른바 '빅3'(영진전문대'영남이공대'대구보건대)를 비롯한 전문대들이 우리나라 고등직업교육을 이끌 정도로 앞서가고 있고 취업률도 전국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호랑이' 같은 전문대들이 포진하고 있다.
전문대 진학생들은 전반적으로 일반대 진학생과 비교하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다. 한국장학재단이 분석한 2015년도 국가장학금 신청자 분포를 보면 전문대생 중 소득분위 3분위 이하의 학생 비중(57.9%)이 일반대(46.1%)와 비교해 11.8%포인트 더 많았다. 전문대 관계자들은 최근에는 직업관이 뚜렷해 전문대를 진학하는 학생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전문대를 진학하는 학생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서민 정책과 교육 민주화를 강조하는 현 정부가 전문대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당위성이기도 하다.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폄하가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라도 이러한 인식 개선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젊은이들이 자긍심을 갖고 차별 없이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굳이 일반대 진학에 대한 열망도 많이 줄어들고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문제점들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려면 정부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위상과 역할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것.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일 것이다. 전문대 소외는 없어야 한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