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머지않았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도 학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 10분 동안 학생들의 질문을 받다 보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유담이 엄마, 내일 아이들 현장체험학습 가는 거 아시죠? 제가 도시락 두 개 준비할게요. 미안해하지 않기♡'
워킹맘은 늘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균형이라는 것이 공간이 바뀐다고 역할마저 완벽하게 바뀌는 것이 아닌지라 때론 집에서도 학교 일을 해야 하고, 반대로 학교에서 당장 오늘 저녁 먹어야 할 먹거리와 아이들이 챙겨갈 준비물을 걱정하는 때도 있다. 고등학교 근무 19년 차인 나는 자연스럽게 집보다 학교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두 아이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부채의식은 숙명과도 같았다.
내가 잘하는 것 중 아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방법이 있을까? 고민의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기로 했다. 책읽기조차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데 우리 아이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함께 책을 읽을 친구를 찾았다. 순식간에 같은 아파트,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친구 세 명이 모였다. 드디어 시작.
'우리를 먹지 마세요.'(우리 로스 글, 그림)
아이들은 공장식 축산 농장과 육식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을 읽고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 먹는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먹거리이기 이전 '닭'과 '돼지'라는 하나의 생명체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후 아이들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읽은 책이 늘어갈수록 엄마들은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책으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듯, 엄마들은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함께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유담이 엄마, 바쁘지요? 제가 아이들 데리고 하루 놀다 올게요.'
'유담이 엄마, 바쁘지요? 제가 도시락 두 개 준비할게요.'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엄마들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함께 아이를 키우기 위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독서토론 모임이 올해로 6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얼마 전 아이들과 '사피엔스'(유발 하라리)를 읽으며 자신들의 독서토론 역사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예전에 썼던 소감문을 보며 마치 빛바랜 첫돌 기념사진을 보는 것처럼 신기해했다. 올해는 꼭 아이들이 썼던 독서토론 소감문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 그 책의 마지막 장에는 책으로 함께 아이를 키워온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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