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생들의 시각 Campus Now!] 불편한 수업 속 학생

고등학교 시절 익히 알려진 명강의,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연 '정의란 무엇인가'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끝까지 보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수업 속에서 느껴졌던 교수님과 학생들의 열정, 관심은 순수했던 예비 대학생에게 기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대학생 3년 차인 지금, 또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없는 강의들과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중 하나 기억에 남는 강의가 있다. 최근 새 마음, 새 뜻으로 전공 강의에 출석하고 자리를 잡았다. 30분가량 수업이 이어졌을까. 교수님의 정치 성향은 소위 '우파'였다. 마침 북한 미사일 발사 얘기를 꺼내고 전쟁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교수님은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발전했으며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쟁은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한동안 교수님의 이 같은 정치적 성향이 묻어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충분히 존중돼야 하며, 이를 나와 다르다고 해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죽은 자에 대한 예의조차 갖추지 못했던 말을 존중할 필요가 있을까. 수업 중 일부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상당히 떨떠름하며, 소름 돋는 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위와 같은 사례는 생각보다 종종 있는 일이다. 성차별적 발언이 계속되며 원치 않는 사상이 강요되기도 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안타깝게도 대부분 우리는 항의, 건의 따위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왜 우리가 겪는 부당함을 애써 외면하게 되는 걸까. 당연하게도 우리는 수업 속 학생이란 성적이 저당 잡힌 사회적 '을'임을 알고 있다. 종강과 동시에 끝날 인연이며 한 시간만, 하루만 더 잘 버텨낸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름대로의 저항 방법은 있다. 효용성 없는 강의평가에 0점을 주거나, 익명이 보장되는지 확신할 수 없는 본부에 호소하는 것.

한 사람이 지니는 사회적 권위와 파급력은 그 지위가 높을수록 절대적인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날을 겪으며 절실히 체감했다. 그럼에도 갑과 을의 관계는 여전히 수직적 권력구조이며, 부당함을 정당히 호소할 수 있는 곳은 부족하다. 미래의 인재를 길러낸다는 고등교육기관 '대학'에서 을의 용기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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