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수 이상', '역전앞', '토요일날'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말은 학교 문법에서 가르치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의 한 유형에 속한다. 어법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잉여적 표현이 있는 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오히려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일단 한자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중복되는 부분을 줄였을 경우 동음이의어가 늘어나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해(被害)를 입다'는 말에서 피(被)에는 '입다, 당하다'의 뜻이 있기 때문에 잉여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바로잡는다고 '해를 입다'라고 한다면 10개가 넘는 동음이의어 '해' 중에서 문맥에 맞는 것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피해를 입다'고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기 때문에 잉여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추가로 말을 더 넣어 의미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에는 '피해를 입다'와 같이 같은 의미의 말을 결합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널리 사용되고 있는 '민폐'(民弊)라는 말은 그런 말들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민폐라고 하면 보통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남들을 힘들고 번거롭게 하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맨날 일 저지르면서 수습은 하지 못하거나 남들이 일을 해 보려고 하면 방해만 하는 인물들을 '민폐 캐릭터'라고도 한다. 이때 사용하는 '민폐'는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을 뜻하는 '폐'(弊)와 의미가 거의 일치한다. 그냥 '폐'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허파를 뜻하는 '폐'(肺)이기 때문에 앞에 말을 하나 더 넣어 의미를 분명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가 확실해지기 때문에 '민폐 캐릭터'와 같은 말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앞에 붙는 '민'(民)은 '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말의 구조를 본다면 '폐'의 종류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은 보통 민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폐'가 있다면 '관폐'(官弊)도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실제 사용된 말을 보면 '민폐'는 관의 행위로 인해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뜻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 반면, '관폐'는 잘못된 관행이나 관리들의 부정으로 인해 쌓인 폐단을 말하는 것으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민폐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민간의 의미는 약해져 '폐' 대신 '민폐'를 사용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혹여 민폐가 있는지 살펴보라."나 "병력을 늘리면 민폐가 극심할 것입니다."와 같이 정치인들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성찰하기 위해 '민폐'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지금의 정치인들은 그냥 '민폐'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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