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의 중심 타자가 될 거라곤 생각했죠. 하지만 이 정도 거물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걸 알면 신이죠(웃음)."
고교를 졸업할 무렵 이승엽은 내심 삼성행을 원했다. 술 문화와 엄격한 위계질서 등 대학 야구부의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부모는 그가 대학에 진학하길 원했다. 대학 졸업장이 있으면 미래가 좀 더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팔을 걷어붙인 이가 최무영 삼성 스카우트(현 삼성 운영팀 부장). 그는 이승엽의 경북고 야구부 선배이기도 했다. 스카우트 초년병 시절이라 최 부장은 의욕이 넘쳤다. 한동안 이승엽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 씨와 함께 밥을 먹고 소주잔도 여러 번 기울였다. 이씨는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최 부장에게 '물귀신'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이승엽은 당시 고교 수준에선 최상위급 투수였어요. 프로 1군에서도 뛸 만했어요. 다만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아 특급 투수로 성장하긴 어렵다고 봤습니다. 그래도 원체 타격 자질이 뛰어나니 타자로 성공할 수 있다고 승엽이 아버님에게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아버님 마음을 돌리긴 어려웠어요."
1994년 겨울 삼성과 한양대 사이의 이승엽 스카우트 전쟁에서 전환점이 된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당구장 납치 사건'이다. 최 부장은 대구시내의 한 당구장에 이승엽이 한양대 선배들과 함께 있다는 정보를 입수, 홍준학 사원(현 삼성 단장)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한양대 선수들이 얼굴을 모르는 홍 사원이 당구장에 잠입(?), 이승엽을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한양대 훈련에 합류했던 승엽이가 수능시험을 치기 위해 대구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죠. 승엽이 친구에게서요. 마지막으로 한 번 매달려보자 싶었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습니다. 당시 사원이었던 홍 단장님이 화장실에 가던 승엽이를 뒤따라가 밖에 제가 있으니 따라가자고 했어요. 승엽이가 선배들 눈을 피해 말없이 따라나섰어요."
문제는 이승엽이 미성년자라 부모 동의가 없으면 계약이 법적으로 무효라는 점. 결국 남은 방법은 약속한 대로 이승엽이 수능시험에서 40점 미만의 성적을 받는 것뿐이었다. 당시 운동선수들은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하려면 수능시험 점수가 40점 이상이어야 했다. 이승엽은 답을 잘(?) 찍었고, 원하던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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