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포자 50만명 시대…'평생 알바'로 주저앉는다

"불합격 문자에 지쳤어요"

#4년째 취업 준비 중인 A(29) 씨는 100여 곳의 회사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인턴으로 합격했던 2곳에서는 몇 주간 일했지만 끝내 정식 채용이 되지 않았다. '취업 포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A씨는 "불합격 문자와 이메일을 받는 데 너무 지쳤다. 내년이면 나이도 서른이라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지난해 디자인 관련 회사에 취업했던 B(27'여) 씨는 얼마 전 사직서를 내고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였지만 지나친 업무 강도에 비해 대우는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B씨는 "회사에 다닐 때에는 매일 야근에 주말에도 불려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미로 하는 손뜨개 소품들을 만들어 벼룩시장에 내다 판다. 수입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여유는 훨씬 많아져 당분간은 회사에 소속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이른바 '취포자' 청년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8월 청년실업률(14~29세)은 9.4%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p) 상승했다. 1999년 8월의 10.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체감실업률인 청년층 고용보조지표는 22.5%로 1년 전보다 1.0%p나 상승했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사실상 취업을 포기하는 '구직단념자'는 50만 명을 헤아린다. 올 8월 기준 구직단념자는 48만4천 명으로 지난해보다 6만2천 명이나 늘었다.

◆바늘구멍 취업 대신 알바로 먹고사는 청년들

불황으로 창업조차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 취업포기 청년 상당수가 자연스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이 되고 있다. 실제 지난달 한 아르바이트 포털이 회원 1천1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취업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다'(10.4%), '구직 포기상태'(3.9%)라고 답한 응답자는 모두 14.3%로. 2012년 같은 조사(8.6%)보다 5.7%p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치열한 취업 경쟁과 함께 최저임금 상승도 취준생들이 동요하는 이유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천60원 오른 7천530원으로 결정되면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면(유급 주휴수당 포함) 월 157만원가량 벌 수 있다. 이는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 152만880원(직급 보조비'각종 수당은 제외)보다 많다. 게다가 정부가 계획하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월 2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취준생 이모(25) 씨는 "취업 준비를 하느라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시급이 지금보다 더 오른다면 그냥 아르바이트생으로 주저앉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취업포기 청년들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청년 고용의 질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류상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높은 청년실업률로 프리터족과 취업 포기자가 많아졌던 일본의 경우 청년층 인구 감소로 노동 공급이 줄자 실업률 자체는 개선이 됐다. 하지만 불완전 취업을 선택했던 청년들이 나이가 들어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청년 고용의 질 하락 현상이 다른 연령대로 확산돼 고용질 하락을 가져왔다"며 "결국 근본적인 청년 고용 대책은 과감한 구조개혁과 신성장 동력 창출을 통한 잠재성장률 회복"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 실패? 창업이 답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자리 창출, 그중에서도 청년층 일자리를 국정 최우선과제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청년들이 느끼는 취업난은 악화되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 실업률은 올 1월 8.6%에서 2월 12.3%로 최고치를 찍은 뒤 3월(11.3%), 4월(11.2%), 5월(9.3%)까지 떨어지다 6월에 다시 10.5%로 상승했다. 7월과 8월에는 각각 9.3%, 9.4%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은 졸업시즌인 2월에 급등했다가 이후 서서히 내려가는 경향을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년실업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청년층 일자리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에 아직 이르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기존 취업자를 보호하는 정책들이 신규 진입해야 하는 청년층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현재 청년층 취업 활성화 대책의 핵심을 창업에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기업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고용창출 효과를 고려하면 창업이 중요하다. 창업 기업 수를 늘려야겠고, 기업의 생존율 제고를 위해 창업 유형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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