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로 인한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이정석(가명'51) 씨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고 했다. 한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집으로 향하는 10여 개의 계단조차 이 씨는 버거워했다. 숨을 헐떡이며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높은 산 정상을 앞둔 등산가의 발걸음만큼 무거워보였다.
신장 치료를 위해 주 4회, 한 번에 4시간씩 이어지는 혈액 투석 탓에 이 씨 심장은 남들보다 두 배나 부풀어 있다. 현저히 떨어진 체력도 이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수차례 입원 치료를 권했지만 이 씨는 한사코 통원 치료를 고집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집에 혼자 두고 오는 것이 영 찜찜해서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형편도 안 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내가 몸만 아프지 않았어도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도울 텐데 지금은 방치하고 있는 것만 같아 답답합니다."
◇10년 전 사업 망하며 악몽 시작
한때 작은 인테리어 사업체를 꾸렸던 이 씨는 10년 전 무리한 투자로 사업이 기울며 악몽이 시작됐다고 떠올렸다. 사업이 망해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겨워지자 아내는 결국 이 씨 곁을 떠났다. 현재 이 씨는 고등학생 아들, 치매에 걸린 노모와 함께 사무실을 개조한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씨는 "부도가 나기 전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해결될 것 같아 처가에도 손을 벌리려 했는데 아내는 그때 실망이 컸던 것 같다. 내 잘못도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재기를 위해 이리저리 사람을 만나느라 술을 입에 댄 것이 화근이었다. 상실감에 이어진 과음은 이 씨의 건강을 갉아먹었다. 간경화와 당뇨가 동시에 찾아왔고 병이 악화되며 이 씨는 현재 신장 2급 및 호흡기 3급 장애인이 됐다. 재기를 위한 발판조차 사라진 상황이다. 이 씨는 "당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만나는 사람마다 인상 좀 펴라고 할 만큼 힘들었다. 그때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일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건강이라도 지켰으면 어떻게든 돈을 벌었을 텐데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본인 건강만큼이나 최근 치매 증상이 심해진 노모의 상태도 이 씨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몇 달 전에는 이 씨가 혈액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간 사이 노모가 커피를 마시려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둔 주전자를 깜박해 집에 불이 난 적도 있었다. 이 씨는 아직도 집안 곳곳에 화재로 인한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날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 씨는 "병원에 갔다가 집에 와 보니 주방에 불이 막 번지려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물을 올려뒀다는 것을 잊고 주무시고 있었다"며 "내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자칫 큰 사고로 번질 뻔했다. 그 이후로는 병원 가는 시간조차 불안해 견딜 수 없다"고 전했다.
◇간'신장 동시 이식 필요하지만 병원비 막막
병원에서는 완치를 위해서는 간과 신장을 이식하는 수밖에 없다며 수술을 권했다. 게다가 나머지 한쪽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식 부위도 악화될 수 있어 두 장기를 동시에 이식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매달 받는 140만원이 수입의 전부인 이 씨 입장에서 3천만원에 이르는 수술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처지다. 실제로 올해 2월과 8월, 두 차례나 대기 순번이 돌아와 이식 기회가 있었으나 이 씨는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했다.
이식 수술을 위해 선뜻 자신의 장기를 내놓겠다고 한 아들은 유일한 버팀목이다. 이 씨는 10년 전 이혼 당시 생계가 어려워 '원한다면 엄마를 따라가도 된다'는 말에도 곁에 있어 준 아들이 너무도 고맙다고 했다.
"착하게 자라준 아들만큼은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죠. 또 어머니께 '누가 먼저 죽을지 몰라도 끝까지 같이 있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들인 제가 끝까지 돌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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