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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논의] <하> 정부 말 한마디에 '없던 일로' 할 사안인가

원전 주민이 주체가 돼 결정을

원전 지역 주민들은 건강상의 문제, 위험 상존 등을 이유로 원자력발전소를 받을 수 없다고 늘 외쳤지만, 정부는 각종 지원을 약속하며 원전 확대 정책을 이어갔다. 하지만 최근 탈핵 정책을 추진하자 지역민들은 주민들이 수십 년간 양보하고 참아온 원전 정책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설득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원전 지역 주민들은 건강상의 문제, 위험 상존 등을 이유로 원자력발전소를 받을 수 없다고 늘 외쳤지만, 정부는 각종 지원을 약속하며 원전 확대 정책을 이어갔다. 하지만 최근 탈핵 정책을 추진하자 지역민들은 주민들이 수십 년간 양보하고 참아온 원전 정책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설득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한강 물을 냉각수로 쓰는 원자력발전소 한번 지어보면 우리 마음 알 겁니다."

우리나라에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24기 가운데 절반인 12기가 경북 동해안 지역에 밀집해 있다. 나머지 12기 원전 역시 수도권과 뚝 떨어진 부산과 울산'전라도 영광 등 바다를 낀 지역에 위치해 있다. 경북 동해안 지역 원전에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서울 등 수도권 지역으로 대부분 공급된다. 원자로를 식혀야 하기에, 차가운 물이 인접해 있어야 원전을 지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 주변도 원전 건설의 최적지로 꼽힌다. 특히 지진 및 태풍 피해가 없어 더욱 안전하지만 주민 수용성과 부지 가격 때문에 도시와 뚝 떨어진 바닷가 주변에 지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가 들어설 때부터 주민들과 빚은 마찰은 그간 정부가 '돈질'로 해결해 왔다. 주민들은 사고 및 방사능 공포 등을 이유로 원전을 받기 싫어했지만, 정부는 "낙후된 지역을 살리는 길은 원전밖에 없다"며 '통 큰 지원'을 약속하며 원전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랬던 정부가 정권을 교체하자마자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신호탄으로 탈핵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원전 혜택(전기)을 누리기만 한 입장(수도권)에서는 탈핵하면 그만이지만, 수십 년 넘게 원전이 주는 경제적 지원과 갈등 사이를 오간 원전 보유 지역에서는 정부 말 한마디에 그리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경주'울진'영덕 등 원전 보유 지방자치단체들은 "안 받겠다는 원전을 다양한 경제적 혜택과 운영 안전성 등을 내세워 떠맡기다시피 한 정부가 이제는 없던 일로 하자고 나서니 기가 막힌다. 지역 상실감 등을 감안해서라도 그에 상응하는 혜택(신재생에너지 단지'원자력해체기술연구센터 등) 등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무환 포스텍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전 원자력안전기술원장)는 "미세먼지 감축 등을 강조하는 정부가 환경오염과는 거리가 먼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사고'방사선 등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탈핵이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원전 지역에 대한 이해 및 합의, 대안 등 그에 상응하는 정책이 가시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원전 해당 지자체들은 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결정은 원전을 안고 사는 주민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고리와 경주'울진 등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대가 갖는 위험성은 고려치 않고 만만한 지방을 원전 건설의 희생양으로 삼은 과거의 잘못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원전을 보유한 지자체가 주인이 돼 원전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진민간환경감시기구 한 관계자는 "우리 지역, 우리 주민들의 희생 속에 돌아가는 원전의 중단도 우리가 주축이 돼야 한다. 수십 년간 원전 갈등을 겪으며 몸으로 체득한 피해와 이득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번 공론화위 시민참여단에 지역민들이 대거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의대 김유창 교수는 '탈핵 도시 부산 만들기' 토론회에서 "공론화 때 원전 지역 시민참여단에 표결의 가중치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의 구성은 매우 중요하다. 원전이 없는 수도권과 충청권의 여론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 구성에 있어 원전에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가중치를 주거나 추가 할당을 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 대표성'이 퇴색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수원 내부도 빠르게 변화하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전을 시작한 이후 40년 넘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만 받던 한수원이 하루아침에 개혁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한수원 노조가 먼저 신고리원전 5'6호기 일시 중단에 반발해 집회 등 행동에 나서며 완공 직전에 있는 '신고리 살리기'에 나섰는가 하면, 이관섭 사장도 공사 중단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강경한 탈핵 방침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원자력계가 우수한 원전 기술 사장 우려와 미래 에너지 수급에 대한 의문을 계속 제기하자, 최근 정부도 탈핵 정책을 뒷받침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5일 제57회 에너지포럼 기조연설에서, "급작스러운 폐쇄가 아닌 60년 이상에 걸친 단계적 원전 감축을 추진하겠다. 신규 원전 6기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중단 등을 통해 그간의 원전 중심 발전 정책을 신재생에너지원 등으로 전환하고 노후 석탄화력발전 조기 폐쇄 및 신규 석탄발전 진입 금지 등을 통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감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전체 신재생 발전량 중 태양광과 풍력 비중을 2016년 38%에서 2030년 80%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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