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핵투발 사격

1980년대 나는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했다. 155㎜ 견인 곡사포대였는데 소속 부대는 1년에 한두 번씩 '핵투발'이라는 훈련을 실시했다. 곡사포로 핵폭탄을 발사하는 훈련이었다. 하지만 실물 핵폭탄을 볼 수는 없었다. 곡사포용 일반 고폭탄을 핵폭탄이라고 가정하고 장전해 쏘는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시 핵투발 훈련으로 상정한 무기가 요즘 언론에 자주 회자되는 전술핵이었던 것 같다. 전술핵은 통상 100kt(킬로톤) 이하의 핵무기를 일컫는다.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전략핵에 비해 크기가 작아 폭격기로 투하하거나 단거리 탄도'순항 미사일로 발사할 수 있다. 155㎜ 곡사포로 사격 훈련을 실시한 것을 보면 전술핵은 대포로도 발사가 가능한 모양이다.

실제로 한때 남한에는 전술핵무기가 존재했다. 1950년대부터 주한 미군 소속으로 배치하기 시작했는데 나무위키에 따르면 1970년대 남한에는 최대 700발의 전술핵이 있었다. 당시 남한 내 전술핵은 북한이 아닌 중국 견제용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가 개선된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미군은 남한 내 전술핵을 철수하기 시작했고 1991년에 철수가 완료됐다.

북한의 핵 도발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한반도에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목소리가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강하게 나오고 있다. 북핵에 대한 자위권 차원에서 전술핵을 통해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북핵 억지 또는 폐기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전술핵 배치를 요청하겠다며 방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한에 전술핵이 배치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무엇보다 '칼자루'를 쥔 미국이 부정적이고, 우리 정부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서이다. 미국이 부정적인 데에는 여러 속내가 있는 것 같다. 미국은 냉전 이후 실전 배치 핵무기의 대다수를 전략핵무기로 전환한 상태다. 한때 6천600발에 이르던 미군 보유 전술핵은 지금 수백 발 이하로 떨어졌다. 설령 한국에 배치하려 해도 물량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북핵 사태 와중에 우리가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러 주장과 요구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은 그리 쉽게 볼 사안이 아니다. 하물며 핵 개발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옛말에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라고 했는데, 이 문제는 우리가 누울 자리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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