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 파워 인터뷰] '월급쟁이 신화' 김도진 기업은행장

5일 오전 10시 기업은행장실에서 만난 김도진 행장은 거침이 없었다. 체격이 크고 다부진 데다 어투에도 힘이 있었다. 행원들이 별칭으로 부르는 '도진스키'에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세부적인 경영상황 설명에도 막힘이 없었다.

금융권 일각에선 김도진 행장이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선출됐기 때문에 코드인사가 불어닥칠 경우 불안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기업은행 최대 주주는 정부이기 때문. 기획재정부가 51.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은행장 인사를 정부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기업은행장을 중도에 하차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김 행장도 이 점을 잘 알기에, 또 현재 기업은행의 실적이 탄탄한 데다, 내부 승진 행장으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텁기에 불안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말단 행원에서 시작해 수장에 오른 월급쟁이 신화의 주인공이다. 비결은 있었나?

▶딱 부러지게 (비결을) 얘기하기는 뭣하다. 제가 25대 행장이다. (외부에서 행장이 선임돼 오다가) 외환위기 즈음에 우리 내부 승진 행장이 나왔다. 그다음에 2010년도에 조준희 행장에 이어 제가 스트레이트로 세 번째 내부 승진 행장이다. 내부 승진 행장은 다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그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선택받은 것이다. 군에 장교로 갔다 와서 1985년도 입행한 후 여기 계속 있었다. 이 은행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무부장 때나 대외 전략 부행장 때 전략 파트에 있어서 업무계획 만들고, 예산 수립하고 그런 부분들에서 좀 높게 평가받은 것 같다. 기업은행에는 저 같은 능력 있는 사람이 많다.

-'도진스키'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게 됐나. 좌우명이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고 하는데?

▶부장 생활을 할 때 일부 직원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체격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직원들은 거침이 없고 두주불사형이며 업무 능력도 뛰어나서 붙었다고 전함). 싫다 좋다를 떠나서 부행장, 행장이 되니까 대외적으로 많이 불려지더라.

좌우명은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엔 가을 서리처럼 하라'는 의미다.(이 글귀는 김 행장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혀 있기도 하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남에게는 부드럽게 하려고 하는데 꼭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

-지난 8월 1일 창립 56주년 맞아 향후 5년간 중소기업 일자리 10만 개 창출을 키워드로 하는 '동반자 금융'을 기업은행의 새로운 비전으로 선포했던데, 그 의미와 기대 효과는?

▶우리가 2009년부터 시작한 잡월드가 있다. 벌써 8년이 됐다. 10만 명 청년 취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동반자금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성장금융이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창업을 하고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돈만 빌려주고 못 갚으면 회수하는 단순한 관계였다. 이제는 창업-데스밸리 극복-중견기업 성장 프로세스를 모두 돕는다.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회사 성장에 대한 전반을 컨설팅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재도약 금융이다. 해외진출이 취약하면 같이 진출을 해 준다. 중소기업은 급여도 적고 종업원들이 자녀 키우기 어려우니 우리가 공단지역에 어린이집을 만들어 제공한다. 빠른 시일 내에 대구의 성서공단에 어린이집을 만들 것이다. 종업원은 회사에 충성하고, 회사는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가 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선순환 금융이다. 거래 고객 중에는 1세대 경영인이 많다. 자녀에게 승계하고자 하는데 그들이 안 받으려고 한다. 부모가 만들어 놓고도 후계자가 없어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우리가 인수하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성장시킨 후 진짜 주인에게 매각하는 방식이다. 신성금고라고 실제로 하나 인수했다. 거기는 3세 경영인 손자가 안 받겠다고 한 사례다. 부사장이 나서 본인이 하겠다고 해서 우리가 한 30억여원을 지원해 인수하고 부사장을 경영인으로 임명했다. 자리를 잡으면 새 주인을 찾아줄 생각이다. 동반자 금융은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것을 통해 회사들이 성장하면 일자리 창출도 이어지는 것이다. 창업이나 벤처기업 역시 그냥 대출만 하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투자하고 회사가 클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해 준다. 마포지점을 개조해 스타트업 기업을 입주시키려 한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캠퍼스에 스타트업 기업들 입주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제대로 한번 해보려고 한다.

-상반기 경영성과가 좋더라. 주안점을 둔 것은?

▶금융권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조선, 철강 등에 대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서 어느 정도 이끌어 왔다. 금년도 들어오면서 반도체, 석유화학 등이 좋아서 수출도 많이 좋아졌다. 경기가 상승국면이라 우리 협력업체도 좋아졌다. 은행권 전반이 전체적으로 수입이 좋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시중은행은 우리보다 더 성장률이 높다.

-사내 주식을 더 매입했다가 팔아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은행 경영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확신하고 많이 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보유주식의 평가액이 3천만원이 넘으면 강제 매각이나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대구경북에선 금융분야에 관한 한 (대구경북이) 부산에 종속돼 있다는 불만이 많다. 대구의 지점장들이 부산에서 결재를 받는 경우도 있다. 지역 상공인들은 대구경북에도 결재권을 가진 임원의 상주를 요구하고 있다.

▶예전에 대구 본부장에 부행장급이 내려간 적이 있다. 그 이후 본부장급으로 교체를 했다. 조준희 행장이 오고 부산에는 임원급을 배치했다. 대구에는 제가 전략을 맡으면서 하나뿐이던 지역 본부를 두 개로 나눴다. 지역본부도 좋아하고 업무의 집중도도 높다고 한다.

부행장급 배치 문제는 몇 년간 추이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5, 6년 전 제가 전략을 담당할 때 살펴보니 부산경남의 경제규모가 대구경북보다 몇 배는 크더라.

대구경북에 우리 점포가 40여 개 될 것이다. 나름대로 우리 직원들은 대구경북에도 임원이 상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지금 대전충청세종도 커가고 있다. 호남도 그렇다. 그것은 우리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부산담당 부행장을 대구경북까지 맡게 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 보이고. 하여튼 고민을 해보겠다.

-지역 금융 쪽 활성화를 위한 활동은?

▶저희도 대구경북에서 수신(예금)보다 여신이 더 많다. 예전에 이경재 행장님 수행비서를 할 때 행장님이 시장님을 뵐 때다. 기업은행이 대구경북에서 받는 예금이 100원이라면 170원을 대출해 주고 있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500억원 정도를 예금으로 받은 적이 있다. 한 20년 전 얘기다. 그래서 대구경북은 더욱 애정이 있다.

-'번개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직원들과 소통을 많이 하시는데. 행장이 된 후 얼마나 직원들을 만났나?

▶지금 3년에 걸쳐서 650개를 가야 되니까 일 년에 가야 할 점포가 정해져 있다. 가려면 하루에 한 곳은 가야 한다. 지금 140개 정도 갔다. 힘들더라. 그래도 영업현장의 얘기를 듣고 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전략을 담당해서 큰 그림은 알지만 보고서만으로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직원들과의 만남은 제 의무사항이다. 그래야만 그 친구들이 신나게 일을 한다. 직원들 입장에선 은행장과의 의사소통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부심 있을 것이다. 30명이랑 한꺼번에 술을 마시기도 했다.

-주량은?

▶예전에는 좋았다. 지금은 별로다. 자리를 책임질 정도는 마신다.

-인터넷 전문은행 등장으로 시장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대응 전략은?

▶우리도 인터넷 전문은행 하려다 못 했는데 사실 두 인터넷은행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 은행에 메기 역할을 한다.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고객에게 편의 제공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시스템에 들어와서 금융서비스를 누리기 위한 편의를 봐 준다. 그 밑바탕에 보안을 잘 깔아준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로도 우리 거래 고객이 아이원 시스템으로 들어와서 잘 활용하고 나가도록 준비가 돼 있다. 두 인터넷 전문은행은 원가가 적고 신속하게 업무 처리를 하는데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만 복잡한 대출업무는 예외지만.

-시중은행의 당면 과제 가운데 하나가 국제화다.

▶우리의 출발은 중국이다. 중국 대륙에 가 영업을 해서 이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고 안정적이지 않다. 환경, 임금인상 등의 어려움이 있다. 또 다른 중국을 찾아 떠난 곳이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점포를 2개만 허용해 준다. 하노이, 호찌민에 있다. 3개부터는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신청했다. 하노이 지점에 본국 직원을 한 명 더 보내서 2개 팀장 구조다. 실질적으로 두 개 지점을 운영하는 것처럼 한다. 법인 허가가 나올 때까지는. 호찌민도 마찬가지다. 점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외환위기 후 철수했다가 다시 들어가려 하니 그쪽 금융당국이 거부하더라. 인수합병을 하라는 요구가 있다. 인도네시아 내부의 은행이 너무 많다. 소형 은행에 대한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나라라 준비를 많이 한다.

-기업은행의 위상은?

▶지배구조상 국책은행이자 특수은행이다. 농협하고는 형제간이다. 농업은행이 있었다. 5'16 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농업은행을 분할해 도시에는 중소기업은행, 외곽에는 농협중앙회를 만들었다. 그게 1961년 8월 1일이다. 우리 창립기념일이 8월 1일이다. 농협과 아버지는 같다. 우리는 국책은행인데 업무내용은 시중은행과 똑같다. 상장이 돼 있으니 공시하고 감독과 감시도 받는다. 지배구조만 국책은행인 셈이다.

정리 유광준 기자, 사진 김상형 객원기자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1978년 대구 대륜고 졸업

▷1983년 단국대 경제학과 졸업

▷1985년 기업은행 입사

▷1995년 은행장 비서과장

▷2005년 인천원당지점장

▷2009년 대외협력부장

▷2010년 전략기획부장

▷2012년 남중지역본부장

▷2014년 경영전략그룹 부행장

▷2016년 12월~제25대 기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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