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칼럼] 소득분배 개선이 성장과 함께하려면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전 한은 대구경북본부장
서울 출생. 관악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국 통화재정팀장. 한은 부설 경제연구원 부원장. 전 한은 대구경북본부장

가계소득 높여 내수진작 하는 성장

기업 임금 인상 압박해 경쟁력 저해

교육'주거'통신비 등 경직 비용 낮춰

가계소득의 실질 구매력 높여 줘야

'국정운영 5개년 기본계획'과 '2018년 정부예산안'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의 기본 윤곽이 드러났다. 그 핵심은 가계소득 증대를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복원하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도 예산증가율을 경상GDP 증가율을 크게 상회하는 7.1%로 잡고 늘어난 예산의 60%를 복지, 교육 및 일자리에 집중시킴으로써 '큰 정부' '복지정부'를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정책은 대선공약을 구체화한 것이라 예상 밖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보수와 진보 간 생각의 간극이 여전한 상황에서 진보적 색깔이 뚜렷하고 소득주도 성장전략이 가지는 실험적 성격 탓에 경제계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이나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정부의 역할을 늘리고 복지 사각지대를 줄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큰 정부, 복지정부를 시장경제의 후퇴, 퍼주기식 복지로 폄하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소득주도 성장전략은 상대적으로 소비 성향이 높은 가계의 소득을 높여 내수를 진작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환경하에서 시장기능만으로 가계소득을 높일 수 없다는 점이다. 가계의 주된 소득원인 임금은 경제 전체로 보면 중요한 수요기반이지만 개별 기업이 이를 고려하여 주도적으로 임금을 올릴 유인이 없다. 생존경쟁의 비용절감 압박이 상당한 데다 임금 인상이 가져오는 수요기반 확충은 내가 아닌 다른 기업이 하는 한 무임승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거스르려면 동력이 필요하듯이 글로벌 경쟁이라는 중력에 반하여 임금인상 효과를 도모하려면 정부 개입이 유일한 수단인 셈이다. 정부가 나서서 최저임금을 올리고 기업에 일자리 창출을 호소하는 한편 복지를 확충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소득분배 개선이 경제성장도 가져올까? 노동자의 소득분배율을 높이면 투자와 수출이 줄지만 소비증가가 상쇄하고도 남아 총산출이 늘고 그 결과 자본가나 기업인들도 혜택을 본다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론자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대외개방도가 높은 경제는 수출감소 효과가 커 총산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의 모태가 되는 임금주도 성장론도 인정하여 국가단위의 개별 추진보다 국제공조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국제경제환경은 보호주의에 바탕을 둔 '각자도생' 전략이 우위에 있어 국가 간 정책공조를 기대하긴 어렵다. 따라서 한국만의 임금인상일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우리 수출이 받을 타격이 작을 것이라 단언하긴 어렵다.

소득주도 성장전략이 던지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소득정체가 지속되면 유효수요 부족으로 성장정체가 온다는 것이 하나요, 소득분배 개선을 통해 성장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필자는 이중 첫 번째 메시지에는 동의하지만 두 번째 메시지에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성장정체를 막으려면 소득분배 개선이 긴요하지만 글로벌 경쟁을 그대로 둔 채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이는 방식으로 소득분배가 조정된다면 분배 개선과 성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

정부는 소득분배 개선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 탓에 어느 한쪽(기업)에서 빼서 다른 쪽(노동자)에 더해주는 방식이 제로섬이어서는 두 토끼 다 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면 소득분배를 개선하면서 성장을 도모할 수는 없겠는가? 가계의 소득을 무리하게 높이기보다 교육비, 주거비, 통신비 등 경직성 비용을 낮추어 가계소득의 실질구매력을 높이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기업이 직원에게 제공하던 복지기능을 국가가 대신함으로써 기업의 간접적 인건비 부담을 낮추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본다. 결국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정책당국의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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